“요즘 난리 난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사실 원래 제목은…” 사람들 수군수군
2024-10-2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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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 쏠린 관심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이 작품은 국내 최고 프로파일러가 수사 중인 살인사건에 얽힌 딸의 비밀과 마주하고, 처절하게 무너져가며 심연 속의 진실을 쫓는 부녀 스릴러다.
일각에서는 '이친자' 신드롬까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감배'(작가, 감독, 배우) 완벽 조합이 이뤄져 숨 쉴 틈 없이 흘러가는 극 전개에 많은 이들이 넋을 놓고 시청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시청자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원래 제목은 지금 것과 달랐다는 점을 알아내며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원제는 '거북의 목을 노려라'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집필한 한아영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21년 MBC 드라마 극본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 작가가 해당 상을 수상할 당시 작품 제목은 '거북의 목을 노려라'였다. '거북의 목을 노려라'라는 제목은 현 제목과는 분위기와 결이 사뭇 달라 보인다. 이에 네티즌들은 "원제가 더 좋다" "지금의 제목이 더 좋다" "원제는 영화에 더 어울린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또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원작이 따로 없는 순수 창작극이지만, 해당 제목의 소설은 이미 출간된 적 있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인 마사 스타우트의 저서 'The Sociopath Next Door' 국내 번역서 제목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드라마에 그대로 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드라마 제목 사용에 관한 사전 협의는 이미 완료된 상태이며, 드라마 내용은 동명 소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기획 의도는 다음과 같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닌 믿음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당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단 한 사람을 떠올려보라. 온 세상이 등을 돌린대도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사람, 법 없이도 살 올곧은 사람. 그는 가족이거나 오래된 친구, 평소 존경하던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 그가 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실수나 사고가 아닌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죽인 악인이라면?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발 벗고 나서서 변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증거가 오직 그를 가리키고 있다면... 그 믿음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제 반대로 당신이 살인 혐의로 쫓기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죽였을 수도, 혹은 누명을 썼을 수도 있다. 진실이 어떻든 주변인의 반응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배신감과 동시에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신뢰란 누군가에 강요할 수도, 노력한다고 줄 수도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오롯이 믿는 사람의 몫이고, 그 안에는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보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보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는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는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구보다 너를 잘 안다는 오만... 손쉽게 판단하고 평가해버리는 편견과 잘못된 믿음이 관계를 망치도록 내버려 둔다. 설령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일지라도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는데, 그토록 사랑하는 이를 생각보다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모든 걸 다 안다고 착각한다. 오래된 나무가 계속해서 싹을 틔우고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듯 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오늘도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있을까. 이것은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진실로 나아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를 통해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동시에 또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