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에도 화들짝... 일본인들은 왜 매운맛에 약한 것일까
2024-09-0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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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이유
일본인들은 매운맛에 약하다. 농심 신라면이나 나가사끼 짬뽕의 매운맛에도 화들짝 놀라는 일본인이 많을 정도다. 일본인들은 매운맛을 '카라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아프다'라는 뜻의 '카루'에서 유래했다. 이는 일본인들이 매운맛을 통증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인들은 왜 매운맛에 약한 것일까.
일본인들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이유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깊이 관련돼 있다.
우선 일본의 음식 문화는 예로부터 매운맛을 강조하지 않았다.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었고, 이로 인해 매운맛을 내는 고추를 비롯한 향신료의 사용이 제한됐다.
아울러 일본의 전통적인 요리 방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이러한 음식 문화의 배경에는 기후, 지리적 조건, 그리고 교역 역사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를 갖고 있으며,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기 때문에 해산물과 쌀이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신선한 재료를 그대로 사용해 부드럽고 섬세하게 조리하는 방식이 발전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대표적인 요리인 스시나 사시미는 해산물의 신선함과 자연스러운 맛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음식 철학은 자연스럽게 매운맛보다는 신선한 재료의 본연의 맛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또한 일본의 전통적인 조미료인 된장, 간장, 미림, 다시 등은 짠맛, 단맛, 감칠맛(우마미)을 중시한다. 강렬한 매운맛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 요리에서 매운맛이 나는 유일한 조미료로는 와사비와 고추냉이가 있지만, 이는 고추의 매운맛과는 다른 종류의 자극적인 맛이다. 와사비나 고추냉이의 알싸한 매운맛은 혀에 오래 남지 않고 빠르게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일본이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게 된 또 다른 요인은 교역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에도 시대(1603~1868)에 약 200년간 쇄국정책을 유지하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제한됐고, 외래 음식문화의 유입도 적었다.
이와 달리 고추를 포함한 향신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중국과 한국에선 매운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일본이 서구 문물과 활발히 교류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였다. 이때부터 서양 요리와 함께 일부 외래 향신료가 들어왔지만 매운맛은 여전히 일본 요리에서 중심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의 매운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일본인들의 매운맛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일본의 식품 기업들은 매운맛을 강조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일본의 식당에서도 매운맛을 조절할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일본 현지의 매운맛 식품 수요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2018년부터는 얼얼한 매운맛을 중심으로 한 ‘4차 매운맛 유행’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매운맛 식품은 전후 일본의 발전 및 사회적인 스트레스의 증가와 함께 수요가 확대돼 왔다.
1980년대 중반의 일본은 거품경제로 일손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회사 면접이나 사내 면담 시에는 ‘24시간 근무 가능하세요?’라는 말이 유행하며, 노동 시간에 상관없이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소비자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자극적인 식품을 찾기 시작했다. 1986년 일본에서는 아주 매운맛을 의미하는 ‘게키카라(激辛)’가 ‘올해의 유행어’로 선정돼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고추 및 여러 향신료를 사용한 감자 칩 카라무쵸(カラムーチョ)를 시작으로 각 식품업체가 매운맛 스낵을 차례차례 출시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미식’에 대한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음식의 종류가 다양화됐다.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전국에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음식점이 증가, 에스닉 푸드가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동남아시아 음식이 친숙하지 않았으나, 매운맛과 채소 사용을 통해 건강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1971~74년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서 활동하던 시기로 닷컴 버블 붕괴 및 금융위기에 따른 불경기가 지속됐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매운 고추로 알려진 하바네로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2003년 하바네로로 만든 스낵인 ‘폭군 하바네로’가 출시됐으며, 라면 전문점 ‘모코 탄멘 나카모토’와 매운 라면의 판매가 늘어나는 등 매운맛 식품 출시 및 취급 음식점이 증가했다. 한국의 신라면도 이 시기에 일본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고추뿐만 아니라 얼얼한 매운맛을 내기 위해 산초, 카레, 후추, 유자후추 등의 향신료 사용도 함께 증가하고 있으며, 기존의 건조·분말 형태의 향신료 대신 향과 맛이 강하며 식욕 증진 및 디톡스 효과 등이 있다고 알려진 생 향신료도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