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요, 멈춰” 비명에 정차…버스 급출발로 80대 뒷바퀴 깔려 사망 (서울)

2024-08-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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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접수된 버스 난폭 운전 관련 민원 무려 428건

서울에서 버스 기사가 승객이 내리는지 확인도 안 하고 급출발해 80대 노인을 숨지게 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12일 당산동 버스 정류장에서 발생한 80대 여성 사망 사고가 버스 기사의 과실 때문이라고 보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해당 기사를 입건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 소식은 14일 조선일보를 통해 전해졌다.

피해자인 A 씨는 80대 여성이다. 그는 지난 12일 오전 10시 46분께 문래역 인근 정류장에 멈춘 지선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A 씨가 완전히 내렸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문을 연 채 버스를 출발시켰다. 버스 계단에서 그대로 추락한 A 씨는 뒷바퀴에 치여 숨졌다.

경찰이 확보한 감시 카메라 영상에는 A 씨가 버스가 완전히 멈춘 뒤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때 버스는 A 씨가 두 발을 땅에 딛기도 전에 출발했다.

A 씨는 버스 뒷바퀴에 깔렸고 이를 목격한 승객들은 황급히 "멈춰요, 멈춰", "사람이 떨어져 깔렸다"라고 소리를 질러 기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그제야 버스 기사는 상황을 인지하고 정차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인근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피해자 아들은 "몇 달 전에도 어머니가 버스 급정거로 사고를 당해 입원했다"라며 "그때 '버스가 정차하면 일어나시라'고 당부를 드렸는데 원칙대로 행동하셔서 변을 당했다"라고 매체에 털어놨다.

그는 "귀중한 인명의 안전을 책임지는 버스 기사가 기본적인 규정조차 지키지 않았다니 말이 되느냐"라며 "어머니의 죽음이 너무도 허망해 화가 난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버스나 택시 등 여객운수업 종사자는 반드시 승객 승하차 시 전후방을 살펴 안전 여부를 확인해야만 한다.

'문을 완전히 닫지 아니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출발시키거나 운행하는 행위', '여객이 승하차하기 전에 자동차를 출발시키는 행위'는 모두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특히 '승객 추락 방지 의무 위반'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로 분류돼 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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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이 2019~2023년 5년간 접수한 버스 난폭 운전 관련 민원은 428건이다. 이중 절반 이상인 219건(51%)이 60대 이상 고령 피해자로 확인됐다. 그 다음으로 '미끄러짐·넘어짐' 282건(65.9%), '부딪힘' 61건(14.3%), '눌림·끼임' 58건(13.6%)으로 나타났다.

경기도버스운송사업조합 민원 게시판만 봐도 지난 2월부터 '난폭 운전' 키워드로 접수된 민원만 2650건이다. 민원 내용은 대부분 "급출발 덕에 다칠 뻔했다", "난폭 운전으로 관절 나간다" 등이었다.

버스 기사들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배차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폭 운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교통 체증이나 사고 등으로 배차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회사에서 심하면 징계까지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버스 탑승 승객이 완전히 차내에 자리를 잡거나 하차 승객이 정류장에 내려 안전을 확보한 뒤에야 버스·택시 등이 출발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이미연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후진적인 '빨리빨리' 대중교통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라며 "배차 시간 준수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임을 전체 사회 구성원이 인지하게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home 한소원 기자 qllk338r@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