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봤다면서…” 여자 소령이 군대에서 당한 일
2024-07-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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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세상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든다”
현역 여군이 성희롱을 당했다며 군 실태를 폭로했다.
1일 경향신문은 육군 소령 이채영(44) 씨가 당한 성범죄 전말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 씨는 육군 대령 A 씨와 지난 2021년부터 방사청 내 같은 팀이었다.
A 씨는 회식 자리에 이 씨를 부르거나 퇴근 후에도 취한 상태로 이 씨에게 연락했다. 심지어 자신의 원룸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한 적도 있다. 이런 연락은 시간을 가리지 않았고 메신저 대화 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씨는 “주말 부부인 A 씨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오피스 와이프’로 여기나 싶었다”며 “술 취한 밤 전화해서 자기 집으로 오라고 강요하고 메신저에 하트 모양 이모티콘을 찍어보내며 일방적으로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거절 의사를 밝혀도 소용 없었다고 한다.
2022년 1월쯤 A 씨는 자신의 원룸에서 이 씨와 술을 마시다가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물었다. 이 씨는 “저보다 선배인 ○○ 중령도 그렇고 나이 많아도 안 하는 사람 많은데 뭘 그러시냐”고 답했다. A 씨는 “거기(○○ 중령)는 얼굴 보면 못 간거지, 너는 안 간거고”라고 했다.
A 씨 숙소에는 속옷 빨래가 걸려 있었고, 화장실 문이 고장나 사용을 꺼리자 A 씨는 “그냥 쓰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이 씨는 2022년 8월 국방부 조사본부에 A 씨를 신고했다. 성희롱과 갑질을 당했다는 것이다.
또한 육군 대령 B 씨, 중령 C 씨에 대해서도 명예훼손과 성추행 등으로 신고했다. B 씨는 2020년 술자리에서 이 씨에 대해 "얼굴이 성형수술이다. 술자리에서 쓰러졌는데 팬티까지 다봤다. 덤벙댄다"고 했고, C 씨는 "부장님께 오빠라고 부르라", "너도 진급하려면 치마 입으면서 섹시미를 어필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사본부는 A 씨에 대해 퇴거불응죄로 군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고, 방사청에는 A 씨를 징계할 것을 통보했다. 다음해 6월 방사청 징계위원회는 A 씨에 대해 정직 1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군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A 씨를 불기소했고, A 씨는 징계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인용됐다.
A 씨는 징계에 대한 항고 심사를 제기했고 지난 4월 국방부 군인·공무원 징계 항고심사위원회는감봉 2개월이라는 경징계를 결정했다. 갑질은 인정되나 성희롱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A씨는 대령으로 진급했고, 이 씨는 제외됐다. 이 씨는 “방사청 직원 중 군인이 500명, 육군은 200명 가량인데 그중 육사 출신이 70퍼센트에 달한다”며 “내가 미혼 여군이고 만만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했고, 수시로 오는 연락 때문에 ‘콜걸’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진급 심사를 앞두고 있어 견뎠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처럼 군 내 부조리나 갑질 행위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내부에선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A 씨 측은 “징계 사건 중 성희롱 부분은 발언 내용·상황 등을 국방부 항고심사위원회에서 ‘혐의없음’ 결정했다. 당시 피해자도 출석해 의견을 충분히 낸 것을 바탕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피해자가 주장하는 ‘콜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B, C 씨도 반소를 제기했다.
이 씨는 “군대 내에서 문제 제기한 사람만 배제되고, 무고 가해자로 몰아가는 것이 너무 답답합니다. 제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야 제대로 조사할 것이란 생각까지 듭니다"라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 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