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훈련병, 운명이라 생각하라” 하나회 퇴역 장군 발언, 유족은 '대분노'

2024-06-2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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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일자 성우회는 게시된 해당 글 삭제
훈련병 유족은 성우회에 입장 요구해

군기훈련(얼차려)를 받다 사망한 훈련병의 어머니가 가해자인 중대장 구속에 반대한 예비역 중장에게 분노를 표했다.

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얼차려)을 실시한 혐의로 중대장(대위)이 21일 오전 강원 춘천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얼차려)을 실시한 혐의로 중대장(대위)이 21일 오전 강원 춘천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6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사망한 박모 훈련병의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할 소리인가"라며 "장군씩이나 지냈다는 사람이 국민을 위한 희생과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도 구분을 못 하는 걸 보니 사람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군의 악습이 아주 뿌리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앞서 규정을 어긴 군기훈련을 지시해 박 훈련병을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 중대장 등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앞둔 지난 21일 예비역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 성우회 홈페이지에는 ‘중대장을 구속하지 마라! 구속하면 군대 훈련 없어지고 국군은 패망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은 육군 예비역 중장 문영일 씨가 쓴 글이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 마련된 ‘육군 12사단 고(故) 박모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에서 국화꽃을 놓으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박 훈련병은 지난달 23일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던 중 쓰러져 민간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지난달 25일 사망했다. / 이범희 기자
폭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지난 1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 마련된 ‘육군 12사단 고(故) 박모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에서 국화꽃을 놓으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박 훈련병은 지난달 23일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을 받던 중 쓰러져 민간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지난달 25일 사망했다. / 이범희 기자

문 중장은 전직 대통령 전두환을 필두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육군 사조직 하나회 소속이다. 그는 1군사령부 부사령관과 노태우 정부에서 차관급인 비상기획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문 중장은 “중대장을 구속하면 지휘관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결국 국군은 패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희생자의 가족들은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고통을 당하며 난감하기 그지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운명이라 생각하시라”라고 해괴한 조언을 했다.

또 “군의 사건 사고에 기름을 붓고 즐거워하고 있다”며 군인권센터를 비판하기도 했다.

국민 여론이 들끓자 성우회는 4일 만에 이 글을 삭제했다.

성우회 측은 “성우회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문 중장) 개인적으로 올린 글이라 성우회에서 지웠다. 저희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박 훈련병의 어머니는 "문 중장의 입장이 국군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우회의 입장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성우회의 공식 입장이 아닐 경우 문 중장을 즉시 제명하라고도 촉구했다.

같은 날 군인권센터도 문 중장을 향해 강하게 비판했다. 군인권센터는 "군의 위신을 깎는 것은 중대장의 구속을 요구하는 피해자 유가족과 군인센터가 아니라 문 중장과 같은 자들"이라며 "이번 기회에 국민의 상식과 괴리된 군 일각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성우회 홈페이지에 문 중장의 글이 장시간 방치돼 있었음에도 어떠한 제재와 통제도 가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볼 때, 성우회 지도부가 문 중장의 주장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신병교육대 사고 관련 재발 방지 대책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신병교육대 사고 관련 재발 방지 대책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국방부는 27일 김선호 국방부 차관 주관으로 '신교대 사고 관련 재발방지 대책회의'를 열고 신병교육대(신교대) 훈련병에 대한 체력단련 방식의 군기훈련(얼차려)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육·해·공군 참모총장, 해병대 부사령관 등 각군 주요 지휘관이 참석했다.

각 군은 군인복무기본법에 근거해 각 군별로 자체 시행하고 있던 군기훈련을 보완 및 개선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훈련병의 경우 아직 체력이 충분히 단련되지 않았다는 판단하에 훈련병 군기훈련에 뜀걸음이나 완전군장 상태에서 걷기 등 체력단련 종목을 제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간병은 개인의 신체와 체력수준을 고려해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을 하도록 했다. 훈련 집행 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종목별 횟수, 진행간 휴식시간 부여 등도 명확히 했다.

군기훈련 시행절차에는 반드시 개인소명 단계를 거치도록 표준화했다. 군기훈련 대상자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기상상황을 고려해 장소를 실내인지 실외인지 결정하고 기상변화요소를 고려해 시행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응급상황 대비책 등 시행 절차도 보완했다.

승인권자의 경우 규율 위반자가 병사인 경우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 간부인 경우 영관급 이상 지휘관으로 규정했다.

김 차관은 "(훈련병들이) 아직 완전한 군인으로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부족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맞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이번 회의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강원도 인제군 육군 제12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6명이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구보로 도는 등 규정에 맞지 않는 군기훈련을 받다가 훈련병 A씨가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강원경찰청은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로 중대장 B씨, 부중대장 C씨 등 2명을 27일 검찰에 송치했다.

home 이범희 기자 heebe904@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