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은 무관심 때문…어른들에 '피라미드 게임' 보여주고 싶어”
2024-03-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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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감독 인터뷰…'모방 괴롭힘' 부작용에 “마음 편치 않아”
"모두의 무관심이 이렇게 무서운 학교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피라미드 게임'을 어른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최근 마지막회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피라미드 게임'은 백연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서로의 등급을 정하고 가장 낮은 F등급을 괴롭히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이 잔인한 투표를 피라미드 게임이라 부른다.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소연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피라미드 게임'에서 투표를 기획하고 같은 반 학생을 괴롭히는 건 소수의 주모자이지만, 괴롭힘이 가능하게 하는 건 다른 학생들과 어른들의 방조와 방관이다.
2학년 5반 학생 25명 가운데 대다수는 투표에서 F등급이 될까 두려운 나머지 체제에 순응하고 집단따돌림에 동참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장난이라며 외면하고 묵인한다.
박 감독은 "게임이 탄생한 계기는 무의식과 무관심"이라며 "이런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어른들이야말로 무의식과 무관심으로 게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라미드 게임'은 신예 배우들을 주연으로 기용하고도 높은 성적을 거둬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은 티빙 주간 유료가입기여지수 1위를 기록했고, 해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뷰(Viu)에서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2위에 올랐다.
큰 인기를 얻다 보니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강조한 기획 의도와 달리 드라마를 모방한 학교폭력이 우려되고 있다.
일부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 공개 후 놀이를 가장한 집단따돌림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는 안내장을 학부모들에게 배포했다. '피라미드 게임'은 청소년 관람 불가 시청 등급으로 보호자의 시청 지도가 필요한 작품이다.
박 감독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가 게임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려 했는데 이런 (부작용)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편치 않았다"며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젊은 배우들과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촬영하다 보니 제작진의 마음도 무거웠다고 한다.
박 감독은 특히 수지가 처음으로 폭행당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모든 배우와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고 설명했다. 김지연(그룹 우주소녀 보나)이 자기 대역이 폭행당하는 연기를 보고 먼저 울기 시작하고 마치 전염되듯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다 같이 박수치고 서로 응원하면서 그 장면 촬영을 마무리했어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 현장의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하나가 된 것 같았죠."
작품 종반부에 학생들은 주인공 성수지(김지연 분)의 주도로 결국 피라미드 게임을 없애고, 주모자들은 각자 벌을 받게 된다.
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평화를 되찾은 학교에 두 쌍둥이가 전학을 오고 이들이 게임을 부활시키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시즌2에 대한 암시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 감독은 이를 두고 "사실 그 부분은 수미상관식 표현일 뿐 새로운 학교폭력이 시작된다는 암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쌍둥이를 향해 성수지가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성수지 자신이 처음 전학을 와서 자기소개를 했던 것을 연상케 하는 연출이라는 것.
박 감독은 "마지막 내레이션 속 성수지의 목소리가 피라미드 게임을 다시 시작하려는 두 쌍둥이를 차단하고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게 표현하려 했다"며 "성수지가 백연여고에 와서 피라미드 게임을 없앴듯이 쌍둥이가 새로 게임을 만들려고 해도 막아낼 것이라는 암시"라고 덧붙였다.
'피라미드 게임'은 특히 신예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성수지 역할의 김지연은 과거에도 주연 경험이 있지만, 백하린 역할의 장다아, 명자은 역할의 류다인, 서도아 역할의 신슬기, 임예림 역할의 강나언 등 비중 있는 배역 대부분을 신예로 채웠다.
장다아는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면서도 피라미드 게임을 설계한 흑막이자 과거의 아픔을 가진 백하린으로 변신해 호연을 펼쳤다. 장다아는 그룹 아이브 장원영의 언니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박 감독은 "'장원영 언니'라는 것을 알고 장다아 배우의 오디션을 봤는데, 사실 그런 배우의 배경은 오히려 제가 캐스팅을 망설이게 하는 부분이었다"며 "그런데 외모는 물론이고 손짓이나 발짓, 눈빛, 목소리 톤까지 모두 백하린 자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감독은 장다아가 이번 작품에서 대본이 새까매질 정도로 메모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하며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렸다.
그는 "캐스팅 과정에서 냉정해지려고 항상 노력한다. 다른 건 안 보려고 했고, 이 배우가 배역과 얼마나 닮았는지만 본다"며 "배우의 배경 때문에 캐스팅했는지 묻는 지인들도 있었는데, '네가 직접 보고 느껴보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