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이성진 “한국계로 살아온 경험, 작품에 녹아들어"
2024-02-0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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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스티븐 연 "이민자 현실 직접 경험"
"'성난 사람들'이 세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 이유는 각 캐릭터 안에서 (시청자가) 자기 모습의 일부를 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이성진 감독)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원제 BEEF)을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 감독과 주연배우인 스티븐 연(한국 이름 연상엽)이 2일 화상 기자간담회를 통해 에미상 수상에 대한 소감과 작품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이 감독은 "굉장히 솔직하고 마음속에 깊이 감춰져 있는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그리고 서로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작품을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내면의 어둠을 남에게 보여줬을 때 비로소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이뤄질 수 있으니까요."
'성난 사람들'은 TV 시리즈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 중에선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Limited Or Anthology Series Or Movie)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작가상, 남녀 주연상 등 8관왕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남녀 주연상을 받고,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선 작품상과 남녀 조연상에 더해 여우조연상(마리아 벨로)까지 휩쓸어 지난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
연출과 각본을 담당한 이 감독은 에미상 감독상과 작가상을 받았고, 주연인 스티븐 연은 세 시상식에서 모두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감독은 수상을 기대했는지 묻는 말에 "벤 다이어그램으로 한쪽에는 항상 나를 괴롭히는 자기 의심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 고삐 풀린 나르시시즘(자기도취)을 그리면 중간에 나오는 교집합이 예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며 "저도 양쪽을 오간다"고 운을 떼었다.
이어 "남들이 내 예술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다가도 세상 모든 상을 다 탈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며 "('성난 사람들'은) 그 중간쯤에 도달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스티븐 연 역시 "(수상을) 예상하는 건 쉽지 않았다. 희망할 뿐"이라며 "결과적으로 가장 깊이 느낀 건 감사함이었다. 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뜨겁게 반응해줬기 때문"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스티븐 연은 또 "이런 이야기('성난 사람들')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는 자체에 감사하고, 이런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의 일부가 된 것도 감사하다"며 "과거의 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괜찮아. 마음 편하게 먹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성난 사람들'은 운전 도중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한 주인공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의 다툼이 극단적인 싸움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 장르다. 인물들의 내면에 쌓인 울분과 감정을 코믹하면서도 진중하게 담아내 호평받았다.
이 작품에서 대니는 한국계 이민자의 자녀라는 설정으로 한식당에서 국을 먹고 가족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런 장면들에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이 감독의 경험이 녹아 있다. 이 감독뿐 아니라 제작에 참여한 여러 한국계 미국인들이 손발을 맞춰 훨씬 사실적인 묘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예전에는 한인 교회 같은 요소들을 스태프에 이해시키려면 자세히 설명해야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추가로 설명할 것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스태프가) 저보다 더 잘 이해하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과거 미국 이름 '소니 리'(Sonny Lee)로 활동했었는데, 박찬욱·봉준호 등 세계적 감독의 이름을 미국인들이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지금의 한국식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에서 한국계로 살아온 경험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묻는 말에 "비록 전면에 내세우진 않았어도 서사에 녹아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제가 앞으로 만들 작품 속에도 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영화 안에도 (경험을) 담아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성난 사람들'의 성공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주연배우인 스티븐 연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리지 않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대니의 감정을 다양한 표정으로 연기했다.
이미 '옥자'(2017), '버닝'(2018), '미나리'(2020) 등 한국 감독 또는 한국계 감독의 작품에 다수 출연하며 국내 팬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은 스티븐 연은 이번 작품에서 자기 경험을 살려 연기했다고 한다.
스티븐 연은 "이민자의 현실은 제가 직접 겪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부분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니를 표현하려 참고할 다양한 인물들이 있는데, 이들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결국 공통의 경험이라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대니라는 인물은 모두가 가진 여러 수치심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며 "매우 무력하고 통제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저도 공감한다. 제가 가장 불행한 순간은 바로 무력한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스티븐 연은 자신의 성과를 '기생충'의 송강호와 비교해달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 감독과 자주 얘기하는데, 우리 두 사람에게 송강호 배우는 우러러보는 존재(Common Hero)"라며 "말도 안 되는 비교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