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9년차 이산하 아나운서가 회사 앞에서 '1인 시위' 벌이는 이유 (+현재 상황)
2024-01-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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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부터 진행…“차별 없이 일하고 싶다”
UBC 울산방송에서 8년 넘게 뉴스·라디오 진행을 맡아온 이산하 아나운서가 최근 1인 시위에 나섰다.
한차례 부당해고를 겪은 이 아나운서는 복직 후 사측이 '보복성 갑질'을 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 아나운서가 지난 15일부터 울산 중구 UBC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경향신문 등 매체를 통해 19일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이 아나운서는 2015년부터 UBC에서 별도의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했다. '모닝와이드' 앵커, 라디오 '이산하의 잠 못 드는 밤 그대는' DJ로 활약했고, 기상캐스터, 취재 업무도 도맡아 했다.
그러던 중 2021년 4월 갑작스럽게 회사로부터 해고(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해고 사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아나운서는 앞서 2020년 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를 한 것이 해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이 아나운서는 이런 사측의 조처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문제를 제기했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다. 2021년 11월, 이 아나운서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통해 UBC에 복직했다.
그러나 회사로 돌아온 뒤 이 아나운서는 또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복직한 그에게 사측이 제시한 근무조건은 4~6시간 단시간 근무, 월급 140만~170만 원이었다. 또 '계약기간 1년', '적격성이 부족하면 계약 해지' 등 조항이 담긴 근로계약서도 내밀었다. 이 아나운서는 복직한 지 2년이 지나도록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단시간 노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달 중 또 터졌다. UBC 측은 복직한 이 아나운서에게 유일하게 맡겼던 '날씨 방송'을 폐지하고, 지난 5일 그를 '편집 요원'으로 발령 조처했다고 한다.
이 아나운서는 이런 사측의 조치에 '보복성'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사정상 프로그램이 폐지될 수 있으나, 업무 재배치 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빠졌고, 본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직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과거 그가 담당했던 프로그램도 자리가 비게 됐으나, 여기엔 또 다른 프리랜서를 배치했다고 한다.
이 아나운서는 결국 마이크 대신 피켓을 들었다. 그는 경향신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으로 (시위를) 시작했다. 힘들지만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제는 속상하기보다 분노하는 마음이 더 크다. 제가 했던 방송을 다시 보거나 응원해 주시는 분들 목소리를 들으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며 1인 시위에 나선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문제 제기를 하면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할까 봐 고민했다. 그래도 방송사는 정의를 말하는 곳이자 목소리를 내는 곳이고, 그리고 저는 목소리를 내는 아나운서"라며 "온전한 노동자성을 보장받고 싶다. 차별 없이 근로계약서를 쓰고 정상적으로 일하고 싶다. 애정하는 방송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겪고 있지 않냐. 환경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 아나운서에게 힘을 보태는 움직임도 일었다.
18일 오전 UBC 사옥 앞에선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 전보 규탄과 온전한 노동자성 인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엔딩크레딧(방송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프리랜서 중심의 노동인권단체)과 노동당 울산시당위원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등이 참여한 'UBC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가칭)’은 이날 "UBC는 하루빨리 이 아나운서의 부당 전보를 철회하고,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협의를 통해 기존 업무를 수행하도록 배치하고 노동시간을 보장하라.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도 작성하라"라고 외쳤다.
또 "더 이상 지역사회를 실망케 하지 말고 이 아나운서 사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이번 일이 단순히 UBC 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 "수많은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자본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프리랜서라고 부른다. 마치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계약 결정권을 쥐는 사람처럼 우리를 포장한다"며 "정규직과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이 노동을 하면서도 고용과 임금, 안전, 보건까지 모든 영역에서 비정규직은 차별받는다. 저항하면 어김없이 우리를 탄압한다. 이 아나운서를 향한 탄압은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를 향한 탄압"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UBC 측은 이 일과 관련 경향신문에 "복직 후 (이 아나운서가) 기상 뉴스와 라디오 뉴스를 담당했는데, 기상 뉴스라는 콘텐츠가 경쟁력이 낮아 다른 업무를 찾아보자고 협의를 해왔었다. 저희는 정당하게 협의 과정을 거쳐 업무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아나운서의 1인 시위와 관련해 미디어오늘 측이 입장을 묻자, UBC 관계자는 "따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