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먹고 이상증세 호소한 환자에게 “계속 복용하라”... 환자 결국 사망
2024-01-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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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처치한 대학병원 “급성 콩팥 손상으로 사망”
이상 증세를 명현현상이라며 묵살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가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16일자 머니투데이 인터넷판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박민 판사가 지난 11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8년 2월 1일 야간 빈뇨를 호소한 50대 남성 환자 B씨에 대해 초음파 검사를 실시해 전립선비대증을 확인하고 신통환, 공진단, 탕약 등을 처방했다. 신통환은 전립선질환 치료제, 공진단은 원기 보충이 필요할 때 복용하는 약이다.
환자는 한약을 복용한 다음날부터 설사, 오심,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나자 한의원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이상 여부를 문의했다. A 원장은 “신통환을 먹으면 독소가 빠져나가느라 힘든 경우가 간혹 있다”고 답하며 한약을 계속 복용하라고 안내했다.
한의원 간호실장은 B씨가 계속 전화로 문의하자 “한약, 혈압약, 당뇨약은 함께 복용해도 무방하다”, “너무 힘들면 탕약 복용을 잠시 중단해도 된다”는 취지로 답변하며 A 원장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지 않았다.
환자는 같은 날 오후 대학병원에서 혈액투석, 혈장교환술 등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이튿날 오후 사망했다. 대학병원 의료진은 한약재의 신독성(콩팥독성)이 급성 콩팥 손상을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A 원장은 처방 전 문진을 통해 B씨가 고혈압, 당뇨를 앓은 사실, 2015년 관상동맥 중재술을 받은 사실, 7개월 전 전립선비대증 치료약 복용을 중단한 사실 등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에서 A씨는 한약 처방·복약지도 과정에서 지도·설명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의료행위의 주의의무는 환자가 예견되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도록 요양·건강관리를 설명하는 데까지도 미친다”며 “A씨가 환자의 증상을 만연히 정상 반응으로 치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가 사망하는 중한 결과가 발생했고, A씨가 유족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서도 “유족이 제기한 민사소송 결과에 따라 A씨가 1억1500만여원을 배상한 점, 동종 범행이나 벌금형을 초과하는 처벌전력이 없는 점 등을 종합했다”며 금고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A씨는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약이 콩팥 건강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의사들과 한의학계의 해묵은 싸움거리다.
대한의사협회는 한의원에서 한방치료를 받다가 독성간염이나 신장기능 이상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해 응급실을 찾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2015년 3월 25∼31일 전국 응급의학과 전문의 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7%(64명)가 "응급실 근무 중 한방진료 관련 부작용 사례를 치료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한약과 한방치료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찾는 10명 중 4명이 중증이나 사망을 할 정도로 위중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의사들은 한약이 신장을 안 좋게 한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맞선다. 이들은 한약이 급성신부전의 치료와 만성신부전 환자의 관리에 효과가 있는 까닭에 일본이나 중국, 대만 등 한의학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에선 한약을 콩팥질환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