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씨→전 대통령으로 호칭 통일”... '공영방송' KBS 내부 지침 논란
2024-01-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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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보도본부에 내려진 공지… 내부 반발 나오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 호칭을 두고 KBS(한국방송)가 술렁이고 있다.
KBS 방송 뉴스 책임을 맡은 한 간부가 돌연 내부망을 통해 '전두환 씨'라는 표현을 사실상 금지하는 지침을 내리면서 보도국 내 혼란이 일고 있다.
김성진 KBS 보도본부 통합뉴스룸 주간(방송뉴스)이 4일 오후 KBS 보도정보시스템에 "전두환의 호칭은 앞으로 '씨'가 아니라 '전 대통령'으로 통일해 달라"는 내용의 공지를 올렸다고 한겨레가 단독 보도했다.
김 주간은 이 공지에서 "'전 대통령'은 존칭이 아니라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에 대한 지칭일 뿐"이라며 "(북한) 김일성을 주석으로 부르고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이라 부르고, 김정은도 국무위원장이라고 부르는데 전두환만 '씨'로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된 만큼, 전 전 대통령에 대해 KBS는 물론 언론은 그간 '전두환 전 대통령', '전두환 씨'라는 호칭을 섞어 써왔는데, 같은 날 오전 보도까지도 '전두환 씨'라는 표현을 내보낸 KBS가 해당 지침을 왜 내린 건지 그 배경 등 자세한 내막은 따로 알려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식 공지가 내려온 것에 대해 KBS 내부에선 내심 불편해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별도의 논의도 없었던 데다 전달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KBS 소속 한 기자는 한겨레에 "전두환과 같은 민감한 인물의 호칭 문제는 그 자체로 편집권 문제이기 때문에 기자들 간 논의를 통해서 정한다"며 "이렇게 강제하는 경우는 없다"고 토로했다.
미디어오늘을 통해 "용어는 뉴스의 프레임과 연관되는 중요한 문제로, 용어를 바꿀 때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진 편집 방침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우려를 표한 기자도 있었다.
KBS 일부 관계자는 MBC를 통해 "김 주간은 주변에 '호칭을 다 고치라'고 지시하면서 '불만 있으면 내 자리에 와서 이야기하라'는 취지로 말한 뒤, 이 같은 공지를 올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주간이 전 전 대통령 호칭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현재 업무를 맡기 전인 2021년에도 사내 게시판에 "전두환 씨,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일성 주석, 이순자 씨, 이설주 여사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책임 있는 분의 답변을 요청드린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바 있다.
박민 KBS 사장이 취임한 지난해 11월 13일 통합뉴스룸 주간 자리로 발령받은 김 주간은 부임 이후 보도 지침을 계속해 손질하고 있다.
부임 일주일만인 지난해 11월 20일엔 편집회의에서 관례로 쓰이는 '한중일', '북미' 등 표현을 '한일중', '미북'으로 수정 표기하라는 방침을 공지하기도 했다. '한반도 비핵화'란 표현도 자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중국, 북한을 우선 표기하던 국가 명칭 순서를 달리 쓰고 있다. 대통령뿐 아니라 외교부·통일부 등 부처도 공식 자료에서 '한·일·중', '미북 관계', '러시아 북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이른 시일 내에 한·일·중 정상회의를 비롯한 3국 협력 메커니즘을 재개하기 위해 일본, 중국과 긴밀히 소통해 가겠다"는 발언을 해 이목을 끌었다. '한·일·중'을 두고 '윤 정부의 외교 기조가 드러난 표현이 아니냐'는 시선이 있었으나, 이와 관련 외교부는 측은 "기본적으로 (명칭은) 의장국 순서대로 따르는 관행이 있다. 우리나라가 (3자 정상회의) 의장국이고 다음은 일본이 의장국이다. 어순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처음 발간된 '2023 통일백서'에는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란 표현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