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2023년 보낸 황선홍 “더 중요한 내년, 제대로 해보겠다”
2023-12-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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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 금메달 이어 파리 올림픽 도전
"어렵고 두려워도, 그런 것이 더 자극돼"
"아시안게임 끝난 뒤에도 프랑스 다녀오고, 무릎 수술도 하고, 지난 주말엔 딸 결혼식까지 치르고… 정신 없이 지내왔네요."
며칠 남지 않은 2023년은 황선홍(55)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에게 '아시안게임(AG) 금메달 사령탑'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한 해였다.
9∼10월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축구의 남자 축구 3회 연속 우승을 이끌며 선수, 클럽 감독으로의 성공에 대표팀 사령탑으로 금자탑을 더했다.
26일 경기도 성남에서 만난 황 감독은 "아시안게임 이후엔 좀 정리되고 쉴 틈이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다. 다음 달 훈련부터 당장 내년을 준비하느라 회의도 이어지고, 아시안게임 뒤 수술을 받은 무릎 재활 운동도 매일 하고 있다"며 여전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 '밸런스'와 '시뮬레이션'이 빚어낸 아시안게임 금메달
'금메달'이라는 결과로만 정리하기에 아시안게임 여정은 꽤 복잡다단했다. 6월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선수들의 줄부상과 패배 이후 황 감독은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고, 최종 엔트리 확정 이후엔 선수 선발 논란도 있었다.
황 감독은 "결과가 좋았기에 다 좋아 보이는 거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 대회 전엔 멤버도 약해 보이고 약점도 많은 것 같아서 고민이 컸다"고 고백했다.
'금메달을 따야 본전'이라는 세간의 평가 속에 부담감을 안고 준비한 아시안게임에서 황 감독이 찾은 해법은 '밸런스'였다.
황 감독은 "시작부터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한 부분이었다. 상대는 줄곧 우리의 밸런스를 깨기를 원할 테니, 인내하며 유지하고자 준비할 것을 강조했다"면서 "선수들이 잘 지켜준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되짚었다.
그 밸런스를 지킬 수 있도록 철저한 대비는 당연했다.
황 감독은 "시뮬레이션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어떤 선수를 얼마나 뛰게 할지, 선수의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 이 선수가 빠지면 이후엔 누가 들어갈지 1∼3안까지 세팅했을 정도"라며 "그런 상황을 계산한 것이 토너먼트에서 잘 들어맞았고, 특히 중국과의 8강전이 그랬다"고 전했다.
"중국이나 우즈베키스탄 같은 거친 상대들과의 경기에 대비해선 변수를 최대한 없애고자 선수들에게 우승 목표를 주지시키며 '흥분하지 말고, 판정 항의도 삼가라'며 심리적인 부분을 줄곧 강조했죠. 김학범(현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님과 홍명보(현 울산 현대) 감독 등 전임자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습니다."
2013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K리그1과 대한축구협회(FA)컵을 석권하는 등 프로 무대에서 이미 성공을 거둔 지도자였지만, 대표팀에서의 성과는 황 감독에게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는 "클럽에선 우승하면 K리그 시상식이 끝나면 끝나는 거였는데, 대표팀 감독은 그렇지 않더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대단한 영광"이라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적 관심을 받는 자리에서 기대에 부응하고자 책임감을 갖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MZ 세대와 호흡하며 '더 유연하게'…'지도자 황선홍'의 성장
황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축구에 대한 것이 크게 변한 것 같진 않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상황에 따른 '유연함'이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고 자평했다.
"요새 대표팀 감독은 '1타 강사'가 돼야 한다더라고요. 특성상 선수들을 가르쳐서 만들 수 없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서 퍼즐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게 아직은 어렵죠. 소속팀에서 다른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에게 우리 팀에 와서 세울 자리를 이해시켜야 할 때 특히 그런데, 핵심을 짚어주려고 합니다."
'유연함'은 선수들과의 생활에서도 드러난다.
"요즘은 정말 터치 안 해요. 잡으려고 한다고 잡히지도 않고, 움켜쥐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더라고요. 지낼 때는 즐겁게 지내고, 운동장에서만 응집력 있게 하면 된다고 해요. 예전부터 선수들과의 관계는 중요시했으나 몇몇 선수와 트러블로 저에 대한 선입견이 좀 생긴 것 같은데, 선수들이 더 어려지면서 저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클럽을 이끌 때와는 반대로 각 구단 감독에게 늘 '앓는 소리'를 하며 다가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도 과거와는 달라진 점이다.
황 감독은 "아시안게임 성과는 K리그 구단과 감독님들이 잘 도와주신 덕분이다. 시즌 중 선수들을 보내달라고 할 때 늘 미안한 마음인데, 감사하다고 거듭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적잖은 시간 몸담았던 K리그 얘기가 나오자 그의 입은 더 바빠졌다.
"프로 감독 시절에 '속도'에 대한 불만이 있었어요. 실제 플레이하는 시간을 늘리고, 박진감 넘치게 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는데, 올해 그런 부분에서 K리그에 전환이 일어난 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경기와 함께 많이 발전했고, 팬들이 좋아할 만한 축구가 되어가는 듯 해요."
그러면서 황 감독은 "요즘 새로운 감독들이 많아서 다시 K리그 팀을 맡는다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도 했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때 '빨리 프로에 와서 같이 지지고 볶자'고 했는데 맞닥뜨린 적이 없어서 어떨지 궁금하고, 모든 팀을 다 이길 것처럼 얘기하는 이정효 감독의 광주FC와 대결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어 "내년 울산과 포항, FC서울, 광주 등의 대결이 흥미로울 것 같다. 서울은 김기동 감독이 가면서 '붐업'이 기대되고, 포항은 위기일 수도 있으나 특유의 문화가 있으니 최근의 좋은 성적이 유지될지 관심이 간다"고 덧붙였다.
◇ "좋은 시험 무대 될 2024년, 또 다른 희열이 찾아오길"
"내 축구 인생 중 이제 70∼80%가 지나간 것 같다"는 황 감독에게 2024년은 또 한 번의 분기점이다.
4월 중순부터 파리 올림픽 아시아 예선인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이 열리고, 이를 통과하면 7∼8월 대망의 파리 올림픽이다.
황 감독은 "내년이 더 중요하다. 더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지도자로서 좋은 시험 무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의미를 뒀다.
이어 "그런 긴장감이나 무게감을 잘 넘겨왔고, 그런 승부가 즐겁다. 매우 어려울 거로 예상하지만, 잘 이겨내는 게 또 황선홍이라는 사람이 할 일 아닌가 싶다"면서 "잘 준비해서 또 다른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팬들의 기대나 질타 모두 두려울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나를 더 강하게 하고 자극이 많이 된다"면서 "'속도감 있는 축구'를 추구하면서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지난달 티에리 앙리 감독이 이끄는 프랑스 U-21 팀과 원정 평가전을 치러 3-0으로 완승한 건 자신감을 충전한 계기가 됐다.
황 감독은 "선수 실험의 의미도 있었지만, '이겨서 자신감을 얻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어서 승리에 초점을 맞췄고 소득이 있었다. 선수들에게 '가벼운 일이 아니고 중요한 일'이라고, '자신감 갖고 다음을 준비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가 전략적인 접근으로 결과를 얻었지만 어려운 경기였고, 프랑스가 확실히 퀄리티가 높더라"면서 "그런 경기를 계속 하고 싶다고 협회에 얘기하고 있고, 협회도 노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시안게임 이후 피지컬이나 분석 파트 보강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던 황 감독은 "협회에서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원을 늘려야 하다 보니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다음 달 훈련엔 충원해서 가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U-23 아시안컵에 우선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올림픽 본선 엔트리 밑그림도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와일드카드에 대한 질문에 "마음 같아선 (김)민재, (손)흥민이, (황)인범이 뽑으면 좋지 않겠냐"며 웃은 황 감독은 "와일드카드든 뭐든 대표팀은 항상 그때 모을 수 있는 최상의 선수들로 가는 것"이라는 지론을 밝혔다.
아시안게임 핵심 멤버인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에 대해서도 "이 연령대 최고의 선수이니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면서도 "일단 올림픽 본선에 가야 타진할 수 있을 텐데 결국은 구단 결정의 문제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현지 리그 상황 등이 맞아떨어져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