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샷에 맞아 30대 여성 눈이 영구 실명됐는데… 검찰의 황당한 결정

2023-12-1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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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설업 등록’ 골프장은 안전하다고 간주해야 한다?
일행 앞에 두고서 공 쳤는데… 검찰 ”경미한 규칙 위반“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AI 이미지.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AI 이미지.
골프 인구가 증가하면서 골프장 안전사고가 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안전사고가 발생한 골프장 업주를 불기소 처분했다. 카트 주차 위치를 티박스 앞에 둬 안전사고를 초래한 골프장에 면죄부를 줬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이 경찰에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타구자 A씨, 경기팀장 B씨, 골프장 대표이사 C씨를 최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이 수사한 사고는 2021년 10월 강원도의 K 골프장에서 발생했다. 캐디 D씨는 피해자(30대 여성) E씨, 일행인 다른 여성 F씨를 태운 카트를 티박스 전방 왼쪽에 주차하고 경기를 진행했다.

당시 타구자 A씨는 첫 번째 티샷이 왼쪽으로 휘어 OB 지역으로 빠지자 캐디 D씨에게 멀리건을 받아 두 번째 티샷을 쳤다. 공은 왼쪽으로 더 크게 휘어 카트에 타고 있던 E씨 눈을 강타했다. E씨의 한쪽 눈이 파열돼 결국 실명됐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된 셈이다.

사고가 발생한 홀의 티박스 전방 왼쪽은 산지, 오른쪽은 낭떠러지다. 이 때문에 K 골프장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왼쪽을 보고 티샷을 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카트 주차 지점이 티박스 왼쪽 앞에 있다는 점이다. 왼쪽을 보고 티샷을 하면 공이 카트로 향해 사고 위험성이 높은 특이한 구조로 골프장이 지어진 것이다. 통상 대다수 골프장은 사고 위험성을 감안해 카트 주차 위치를 티박스 앞에 두지 않는 데 반해 K 골프장은 티박스 앞에 카트를 주차하는 위험한 구조로 계속 운영해왔다. K 골프장은 사고 직후 골프장 코스를 변경하는 공사를 단행했다.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카트 주차 지점이 티박스 왼쪽 앞에 있음에도 골프장은 '왼쪽을 보고 티샷을 하라'고 안내했다. / 피해자 제공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카트 주차 지점이 티박스 왼쪽 앞에 있음에도 골프장은 '왼쪽을 보고 티샷을 하라'고 안내했다. / 피해자 제공

수사를 맡은 경찰은 경기팀장 B씨와 대표이사 C씨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송치했다. 골프장 구조가 특이한 까닭에 보다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어야 함에도 일반적인 안전조치만 이행한 것이 업무상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표이사와 경기팀장에게 안전 관리‧감독 책임을 물은 것이다.

검찰 판단은 180도 달랐다. 골프장의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모든 형사상 책임이 캐디에게만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경기팀장 B씨와 대표이사 C씨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대표이사에 대해선 ‘K 골프장이 관계기관 승인을 얻어 준공했고, 체육시설업에 등록돼 있으니 시설물에 하자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경기팀장 B씨에 대해선 ‘일반적인 안전 조치를 이행한 점이 인정된다’는 이유를 들어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 결정을 두고 골프장 이용자들 사이에선 뒷말이 나온다. 체육시설업에 등록됐다는 이유로 골프장 운영자가 경기 참가자의 안전을 살필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게 옳으냐는 것이다. 사고 가능성이 큰 구조로 골프장을 짓고도 별도의 안전 관리 매뉴얼이나 펜스, 그물망 등 안전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점을 간과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사고가 발생한 골프장이 안전사고를 면피하는 데 검찰의 판단을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검찰 논리대로라면 체육시설업에 등록하기만 하면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업무상 과실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체육시설업이 따라야 할 ‘체육시설법 시행규칙’은 ‘안전사고 위험이 있는 곳은 골프코스 사이에 20m 이상 간격을 둬야 하고, 어려운 경우 안전망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K 골프장은 안전사고 위험이 있음에도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았다.

검찰은 법원 판단과도 다른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검찰과 달리 법원은 ’골프장의 안전 관리 의무’에 무게를 두는 판단을 내놓은 바 있기 때문이다.

2019년 5월 J 골프장 3번 홀에서 타구자가 티샷한 공이 4번 홀에서 경기를 진행하다 3번 홀과 4번 홀의 경계지역으로 공을 찾으러 간 50대 피해자의 가슴에 맞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재판부는 "홀 간격이 좁거나 홀이 인접해 인접 홀에서 친 타구가 잘못 날아가 인접 홀까지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면 골프장에서 홀 간격을 충분히 넓히거나, 펜스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 플레이어들이 안전하게 골프경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안전시설 미비’를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검찰은 사고를 낸 타구자 A씨에 대해서까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앞에 있는 일행에게 공 진행 방향에서 벗어나도록 하지 않은 상황에서 타구한 것 자체가 주의의무 위반이므로 과실치상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동행자로부터 “카트 위치가 불안하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들어 A씨가 위험을 인지했다고 봤다.

하지만 검찰은 ‘경미한 규칙 위반’이라는 일반 운동 경기 관련 판례를 인용해 타구자가 골프 카트 방향으로 공이 향할 것을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보고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타구자가 이미 첫 티샷에서 자신의 훅 구질을 확인한 만큼 멀리건 티샷 구질과 방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이 매우 이례적인 판단을 내린 게 아니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지난 4월 안구 파열 사고를 일으킨 타구자에게 과실치상죄를 물은 바 있다. 타구자는 피해자가 탄 카트가 주차한 상황에서 티샷을 했다가 피해자 눈을 가격해 안구를 파열시켰다.

당시 재판부는 “골프공의 진행 방향 전방에 사람이 있는지 먼저 살피고, 피해자가 그 진행 방향 부근에 있는 동안에는 공을 타격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로 하여금 진행 방향에서 벗어나도록 한 다음 공을 타격해야 할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밝혔다.

형사 전문 L 변호사는 "타구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충분히 확인한 뒤에 공을 쳐야 한다“라면서 ”앞쪽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을 쳐서 상해를 입혔다면 최소한 과실은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로 제작한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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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