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도 스펙도 뛰어난 아내가 대머리인 나와 결혼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2023-10-0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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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출신 고졸 납품업체 생산직
성실함으로 거래처 스펙녀와 결혼

사회적 신분(?) 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 흙수저의 러브 스토리가 여운을 주고 있다. 와이프를 잘 만나 벼락 성공을 이룬 '온달 콤플렉스'가 아닌, 고구려 명장 온달 장군처럼 기상과 지략을 두루 갖춘 '현대판 온달'에 관한 이야기다. 누리꾼들은 여성의 안목을 칭찬하면서 "주작이라도 훈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0개월 전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에 올라왔던 '와이프가 나랑 결혼한 이유 우연히 들었다'는 글이 최근 에펨코리아 등 다른 커뮤니티에 회자하고 있다.

글쓴이 A씨는 "와이프는 소위 말하는 스펙녀. 외모 좋고 몸매 좋고 자기 관리 잘하고 집안도 좋고 직장도 좋은 여자다"는 와이프 자랑으로 사연을 꺼냈다.

금형 작업. / 픽사베이
금형 작업. / 픽사베이

그는 "난 고아원 출신으로 고졸에 선반 금형 깎는 생산직이다"며 "각종 자격증 따고 입상도 하고 무식하게 쇠만 깎는 게 아니라 설계 제작도 가능하지만 주변인들은 쇠 깎는 공돌이 취급한다"며 와이프와 대비되는 자기 처지를 돌아봤다.

이어 "더 늦으면 안 될 거 같아 주경야독의 피눈물 나는 고생 끝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쇠 깎는 공돌이다"며 "일감에 따라 다르지만, 연봉은 대략 4000만~6000만원이다"고 소개했다.

예나 지금이나 와이프는 A씨 회사의 큰 거래처 직원으로, 슈퍼 갑 위치에 있다.

처음 와이프가 설계 변경차 공장을 찾아왔을 때 극악의 고정밀도를 요구해 A씨는 눈물 흘려가며 납품을 맞춰야 했다. 덕분에 와이프 회사와는 계속 거래하게 됐고 덤으로 와이프 소개로 새 거래처도 뚫어 A씨 회사는 먹고살 만한 수준이 됐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연락하고 만났지만 거래처 직원과 하청(하도급)의 관계인지라 A씨는 와이프와 썸은 상상도 못 해봤다. 넘볼 수 없는 벽이라 생각했다.

머리 숱이 적은 남성. / 픽사베이
머리 숱이 적은 남성. / 픽사베이

게다가 당시 A씨는 격무로 피부, 외모가 엉망인 건 물론이고 머리털이 거의 다 빠진 대머리였다. A씨에 비하면 와이프는 우아한 백조였다. A씨는 '나랑 노는 세계가 다르구나'라고 정하고, 5년간 철저히 갑과 을의 관계로 지냈다.

그런 상황이 이어지던 어느 날 와이프가 느닷없이 '주말에 뭐 하냐고. 시간 되냐'고 묻길래 A씨는 '바쁘다. 일해야 된다'고 칼거절했다. 몇 주 뒤에 다시 만나자고 하길래 A씨는 '저 사람이 약 먹었나' 싶어서 일 핑계 대고 또 퇴짜를 놨다. A씨로선 '나보다 잘난 능력남이 자기 회사에 넘칠 텐데 끼리끼리 놀지 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사양도 민망했고, 이런 갑의 사람은 어떻게 먹고 노는지 궁금했던 A씨는 못 이기는 척 교제를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의 처가의 극렬한 반대에도 와이프가 총대 메고 돌파해서 결혼에 골인했다.

와이프의 결혼 조건은 처가살이였는데, A씨는 지금은 처가랑 사이가 돈독하다고 한다.

결혼식. / 픽사베이
결혼식. / 픽사베이

결혼해서도 와이프는 여전히 직장 다니고 여전한 거래처 갑과 을의 관계인데, A씨는 4주년 결혼기념일 때 와이프랑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자기와 결혼한 이유를 그제야 들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거래하면서 그 어떠한 요구나 컴플레인에도 A씨가 단 한 번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불평불만이 없었다는 것. 와이프 본인 실수로 인한 불량 건도 몇 번 있었음에도 A씨가 모든 잘못을 다 덮어쓰는 모습에서 모든 사람이 와이프를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A씨는 옆에 있어 줄 유일한 남자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A씨는 "뜬금없긴 했지만 알고 나니 신기한 이유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런 경우도 있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결합을) 궁금해 해서 글을 올렸다"며 장문의 러브 스토리를 마무리했다.

요즘 시대 흔치 않은 순애보를 접한 누리꾼들은 "와이프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 "남편분도 멋지고 그걸 알아본 아내분도 굿", "잘 만나셨으니 행복하게 사시길", "와이프가 현명한 거다", "은근히 있을 법한 얘기다", "주작이라도 훈훈하다" 등 응원 메시지를 남발했다.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