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한번 그냥 쉬어봐라, 어찌 되는지” 구직포기 청년의 피맺힌 경고

2023-08-2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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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못하고 현실부정단계 진입”
“커뮤니티서 자아 만들면서 분탕질이나”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에 등록된 구인정보 게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에 등록된 구인정보 게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니트족(NEET) 급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한 청년 백수가 '구직포기는 자기파괴'라며 위험성을 뼈저리게 경고해 누리꾼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몇 달 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구직포기 위험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소위 백수 청년인 A씨는 "구직포기를 하게 되면 사실상 머리만 커진 중고등학생이나 다름없다"며 "일단 수익이라는 게 없고 부모에게 받는 용돈이 전부다"고 짚었다.

이어 "부모가 자식이 밥은 먹고 다녀야 하니 월 30만원 정도는 준다"며 "직장인 기준 정말 적은 돈임에도 구직포기 상태를 오래 하다 보면 그 돈으로 사는 데 적응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싼 거 찾아 먹고 다니는 곳이라 봐야 피시방이니 이 금액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거다.

구직포기 상태가 되면 친구도 안 만나게 된다.

그는 "나는 어제 '배달의 민족' 할인쿠폰을 받아 치킨을 9000원에 포장해다 먹은 게 최대 자랑거리다"며 "그런데 친구는 직장생활 어쩌고 주식이 어쩌고 하니 만나도 대화도 안 되고 쪽팔리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소통 창구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좁혀진다.

A씨는 "그래도 인간은 외로움을 타기 마련이라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어들어 와서 본인은 취직도 못 했으면서 중소기업 깎아내리고 '구직 포기자가 60만명이다'고 떠든다"며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거다"고 분석했다.

또한 "맨날 커뮤니티 활동만 하면서 '누군 딸배(배달기사를 비하하는 말)로 1억 번다더라, 누군 코인해서 슈퍼카를 샀더라'는 식의 카더라만 들으니 중소기업에서 200~300만원 받는 인생 보면 한심해 보인다"며 "정작 자기는 수익은 1도 없는 잉여 인간인데 취업연계센터에서 알선해주는 직장은 쳐다도 안 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구직포기가 오래되면 현실감각이 박살 나 버려서 대인관계도 못 하고 현실부정단계가 돼 버린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자아를 만들어내면서 분탕이나 치게 된다"며 "이걸 벗어나는 게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입사 면접을 보고 있는 남성 (참고 사진) / imtmphoto-shutterstock.com
입사 면접을 보고 있는 남성 (참고 사진) / imtmphoto-shutterstock.com

A씨의 자기 분석을 접한 누리꾼들은 "그래도 위기를 느끼는 거 보면 금방 벗어날 듯", "저게 무서운 게 악순환 반복", "본인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원인", "나도 백수 생활 반년 안 되게 해봤는데 시간 감각부터 없어짐", "진짜 노가다나 편의점 알바라도 해야 함", "백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게 제일 무서움",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서 무한 합리화" 등 동감한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최근 구직 활동, 진학 준비에 나서지 않고 '그냥 쉬는' 2030 청년이 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가 20대 38만 6000명, 30대 27만 4000명을 기록했다. 두 세대를 합치면 66만명에 이른다.

취업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늘어나는 임금 격차 등 요인들이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들을 ‘그냥 놀게’ 만들어 버린다.

home 안준영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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