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바람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 그도 '축구'를 사랑한 청년이었다
2023-08-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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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평전'에서 공개된 내용
“윤동주는 축구 선수인 문학소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자 저항 시인으로 평가받는 윤동주가 학창 시절 축구 선수로 뛰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윤동주 평전'(서정시학)의 저자 송우혜 작가는 지난해 국가보훈부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윤동주는 정말 매력적인 청춘이었다. 시도 열심히 썼지만 운동도 잘하고 영화도 좋아하는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다"라며 "옛날식으로 말하면 문무를 모두 갖췄다고 할 만큼 공부도 잘하는 데다 축구 선수도 했다"고 말했다.
'윤동주 평전'에서 공개된 문익환 목사 증언에 따르면 윤동주는 축구 선수인 문학소년, 옷차림에도 관심이 커서 손수 재봉틀질을 해 옷을 맵시 나게 고쳐 입는 '멋쟁이'였다.
문 목사는 "문학소년 치고는 의외로 수학도 잘했다"며 "동주는 재봉틀질을 참 잘했다. 그래서 학교 축구부원들 유니폼에 넘버를 다는 것을 모두 동주가 집에 갖고 가서 제 손으로 직접 박아왔다"고 전했다.
스포츠칼럼니스트 류청 기자 역시 2019년 '풋볼리스트'를 통해 윤동주가 축구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당시 축구는 그저 단체로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류청 기자는 "일제강점기에는 집회와 결사 자유가 없었다. 만주 사변 전까지 간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모임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반일 정서가 표출됐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축구 경기를 잘 이용했다. 경기를 치르기 전에는 '광복가'를 불렀고, 경기가 시작되면 '응원가'나 '한산가'를 불렀다"며 "이후 축구가 지닌 사회운동적인 성격이 더 두드러졌다. 일제 감시는 더 교묘해졌지만 축구 경기가 열리면서 계속해서 반일적 성격을 지닌 응원가를 불렀고, 독립군들은 쪽지를 주고받았다. 정강이 보호대 안에 쪽지나 연락처를 넣어 주고받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부연했다.
윤동주의 삶은 이익준 감독의 영화 '동주'를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윤동주는 칼과 총을 대신 펜을 들고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1943년 일본제국 경찰에게 체포돼 후쿠오카 교도소에 2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이후 1945년 2월 16일 원인 불명의 사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 작품으로는 별 헤는 밤, 서시, 자화상, 참회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