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인 배를 발로 차고, 침 뱉은 학생… 그냥 덮으라고 했다” 현직 교사의 고백

2023-07-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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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교권 침해… 한 초등학교 교사의 고백
“교사들, 악성 민원에 맨몸으로 노출돼 있어”

22년 차 현직 교사가 학교에서 겪은 참담한 일을 뒤늦게 고백했다.

초등학교에서 오래 근무해 온 교사 A 씨(현재 초등학교 1학년생 담임)는 교직 생활 중 학생과 학부모에게 수모를 겪고도 묵묵히 견딜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한 초등학교 교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뉴스1
한 초등학교 교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뉴스1

A 씨는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와 인터뷰를 통해 "몇 년 사이 교사 커뮤니티에 교직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이 부쩍 늘었다. 특히 교실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여러 악성 민원 사례를 공유하며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학교에서) 아이가 뾰족한 가위로 친구를 위협해 놀란 교사가 소리 지르며 '그만하라'고 막았더니, 보호자가 '소리 지른 것 때문에 애가 놀라서 밤에 경기를 일으킨다'며 교사를 정서 학대로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를 계속해 제지했더니 다른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를 공개적으로 지적해 망신을 줬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기도 했다. (학생을) 밖으로 따로 불러내 이야기하면 '왜 수업을 못 받게 학습권을 침해하느냐'고 한다"며 학교에서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를 통해 가상으로 구현한 이미지 / MS Bing Image Creator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를 통해 가상으로 구현한 이미지 / MS Bing Image Creator

극성인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 탓에 A 씨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임신해서 만삭일 때였다. (학생들이) 배를 발로 차고, 침을 뱉은 적이 있다. 당시 (그런 행동을 한) 학생이 특수학급 아이였고, 학부모도 예민한 분이었다"며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해 사과를 못 받고 그냥 덮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사들은 악성 민원에 맨몸으로 노출돼 있다. 학교 측이 교사에게 사과를 하라고 시키고 일을 덮으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녀 등교를 돕는 초등학교 학부모의 모습.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이하 뉴스1
자녀 등교를 돕는 초등학교 학부모의 모습.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 이하 뉴스1

A 씨는 "교사들은 '네가 애들한테 그래서야 되겠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괴감을 느낀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교사가 이런 일을 경험하거나 동료 교사들의 일로 보고 듣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제대로 된 훈육은 체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을 스스로 경험하는 게 진정한 교육"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의견을 수용해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효과 있는 교육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의 수업에 학부모가 참관한 모습.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의 수업에 학부모가 참관한 모습.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도 넘은 교권 침해에도 그저 견딜 수밖에 없었던 A 씨는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이 교사들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갈 기회가 된 것 같다. 사실 이 사건(서이초 교사가 겪은 학부모 갑질)은 이미 교사 커뮤니티에서 크게 이슈가 됐었다. '더는 이렇게 되면 안 된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던 와중에 해당 교사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많은 교사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원하는 것은 학생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름 아래 교사가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침해 당하고 있는 이 현상을, 교사를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home 김혜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