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로 반찬 훔친 6.25 참전용사에게 식료품·생활비 주고 사라진 여성 정체
2023-06-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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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부산진경찰서에 도착한 장문의 편지와 식료품들
이번 6.25 기념일 때 참전국 관저에 순금 카네이션 전달해
최근 생활고로 식료품을 훔친 6.25 참전용사에게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에 사는 A씨는 생활고로 8만 원어치의 식료품을 훔친 부산의 6.25 참전용사 B씨에게 식료품과 생활비를 기부했다.
지난 23일 오후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편지 봉투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B씨의 안타까운 소식에 식료품과 생활비를 기부하고 싶다는 A씨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날 A씨는 B씨의 소식을 접하자마자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A씨는 "오늘 아침, 한 기사를 보고 이렇게 급히 부산진경찰서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늘 고생하시는 경찰관분들께 폐가 되진 않을까 걱정됐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 뵙게 됐으니 부디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버젓이 자녀들이 있음에도 생활고에 시달리다 대단한 금은보화가 아닌 그저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반찬거리를 훔친 노인분의 소식을 들은 누구든 가슴 한편에 먹먹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그분이 1950년 6월 25일, 한국인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한국전의 영웅이라는 사실을 접하고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천수를 누리며 좋은 것만 보시고 드셔야 할 분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구석진 그늘에서 외롭게 살고 계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분들의 피와 땀, 젊음 위에 세워진 땅 위에 살고 있는 우리 후손들이 나설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 시작으로 그리 대단치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게 된 참전용사분께 작은 마음을 전해드리고자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식사 한 끼 하실 수 있는 반찬과 그분의 생활 반경 안에서 편하게 쓰실 수 있도록 소정의 금액을 넣은 생활비 카드를 전달해 드린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지금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참전용사분께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마무리했다.
이 사연이 화제가 되자 A씨의 정체도 밝혀졌다. 그는 국내 친환경 욕실 화장품 브랜드 '인프레쉬'의 임직원으로 밝혀졌다.
앞서 '인프레쉬'는 올해 6.25전쟁 기념일을 맞아 16개국 한국전 참전국 관저와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에 순금 카네이션 한 송이와 브랜드를 이용해 준 고객들의 이름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26일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25명이 B씨에 대한 후원 의사를 밝혔다.
또 부산지방보훈청 관계자는 "보훈청에도 후원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B씨에 대한 지원 방법을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다"라며 "이번 주 지자체와 만나 서로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을 조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B씨는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부산 금정구 한 마트에서 7차례 참기름, 젓갈, 참치캔 등 8만 원어치의 식료품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B씨를 즉결심판에 넘길 예정이다. 즉결심판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경미한 사건을 약식재판에 넘기는 것으로, 유죄가 입증돼도 전과가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