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이 1억짜리 작품 훼손하자… 유명 화가가 보인 대인배 반응

2022-10-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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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 거장 박대성 화백, 작품 훼손한 아이 두고
“봉황 지나간 자리에 그 정도 발자국은 남아야”

훼손된 '지서 김생 임서(臨書)'  / 유튜브 '경주엑스포대공원
훼손된 '지서 김생 임서(臨書)' / 유튜브 '경주엑스포대공원

한국화 거장 박대성(76) 화백이 1억 원 상당의 작품을 훼손한 초등학생을 두고 '봉황'이라고 일컬으며 넓은 아량을 보였다.

지난해 3월 경주엑스포대공원 내 솔거미술관에서 열린 박 화백의 특별 기획전 '서화(書畵), 조응(調應)하다'에서, 전시관 한가운데 있는 작품 위에 어느 초등학생이 올라가 눕는 등 문질러 작품 일부가 훼손됐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 시대 최고 명필로 꼽혔던 김생의 글씨를 박 화백이 모필한 것이다. 가로 39㎝ 세로 19.8m에 이르는 대작으로 액자에 넣기 어려워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려 전시했다. 작품의 보험 평가액만 1억 원이 넘는다.

작품 훼손 소식을 들은 박 화백은 도리어 미술관 측에 "아무 문제도 삼지 말라"며 "봉황이 지나간 자리에 그 정도 발자국은 남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화백은 지난해 6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작품이 훼손됐다는 뉴스가 유튜브에서 218만 회 재생됐다고 한다.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내 작품을 그렇게 많이 봤겠나. 그러니 그 아이가 봉황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관에 다시 가서 보니 아이들 눈에는 (해당 작품이) 미끄럼틀 같아 보이겠더라"며 "만약 보상을 요구하면, 아이도 위축될 테고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원망하겠나"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미술관에서 가져가는 기억이 그래서는 안 된다. 인간이 서로 원수지고 살 필요가 없다"며 "물론 관람 문화가 좀 더 개선될 필요는 있다. 이번 기회로 이런 부분이 개선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1969년부터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내리 8번 입선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그의 작품 대부분을 구매했을 정도로 이병철·이건희 부자(父子)가 편애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일출봉' 연작은 '장백폭포'와 함께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접견실 정면에 걸리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박대성 화백 전시장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방문해 이목을 끌었다.

한편 박 화백은 왼팔 팔꿈치 아래가 없어, 오른팔로만 작업을 해낸다. 네 살이던 1949년 빨치산의 습격으로 부모를 잃었고, 이때 그의 왼팔 팔꿈치 아래도 잘렸다.

그는 "몸이 불편한 팔자를 타고난 게 내 인생의 보너스라고 생각한다"며 "몸이 불편하면 게으름도 못 피우고, 이 세상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남이 안 듣는 것,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스티븐 호킹이 그렇지 않은가. 장애가 중증일수록 하느님이 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이 세상은 영원히 사는 데가 아니다"고 밝혔다.

박대성 화백 / 연합뉴스
박대성 화백 / 연합뉴스

home 김하민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