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교묘하게 악의 품고 있는 드라마… 진절머리난다”
2022-07-1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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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기자 “드라마가 장애인 그리는 방식이 나는 우려스럽다”
“장애인이 왜 자기 존재 인정받기 위해 무해함 증명해야 하나”
가히 신드롬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끄는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로펌에 들어가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다. 타인의 선입견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파하는 한 장애인의 성장기를 보며 시청자들을 간만에 무해한 드라마가 나왔다면서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장애인을 그리는 방식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하는 장애인 가족도 있다.
한 매체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 기자는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큰 우려가 들었다고 했다.
김 기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면 타인에게 자신이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해한 장애인과 무해한 장애인, 이 얘기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판타지의 세계에서 또 다른 여러 비장애인들에게 무해한 장애인으로서 존재할 기회와 가치를 얻은 우영우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난 아직도 이런 드라마와 이런 영화들이 여전히 교묘하게 나쁜 악의를 품고 있다 확신한다. 발달장애인을 떠나 소수자들의 얘기를 할 때 꼭 무조건 전제로 따라 나오는 강박적 편향. ‘너희가 너희 존재를 인정 받기 위해선 너희가 다수에게 무해하단 걸 증명해야 한다’란 것. 삶이란 게 살아간다는 게 누군가에게 증명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는 것인가. 그런 건가. 도대체 언제부터?”
발달장애인인 자녀를 둔 김 기자는 “발달장애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얘기를 할 때 특별한 소수자들의 소수자를 내세워 그들의 일반화를 전한단 어불성설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에 사실 진절머리가 난다”라면서 “드라마란 판타지가 발달장애를 내세워 대중의 인식 변화를 노린단 점엔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같은 패턴 같은 방식 같은 노림수. ‘그들의 다름은 그들의 특별함’이란 얄팍한 작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기자는 자신과 인터뷰를 한 연예인의 실제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 기자는 해당 연예인이 “인간은 정말 오묘한 것 같다. 한 쪽이 퇴화되면 다른 한쪽이 특출 나게 발달되니 말이다. 엑스맨도 사실 그렇게 보면 발달장애인이잖나”라고 말한 사실을 언급한 뒤 “이게 비장애인들이 이런 콘텐츠를 통해 받아 들여지는 발달장애의 한계”라고 주장했다.
김 기자는 소수자에 대한 얘기도 장애인을 다룬 콘텐츠처럼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조각처럼 멋진 부잣집 게이, 사회 지도층 인사인 레즈비언, 천재 서번트 증후군 의사, 남자와 여자 모두의 심리를 꿰뚫는 트렌스젠더 독심술가. 그들은 언제나 항상 뭔가 그렇게 특별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다”고 했다.
“유해함과 무해함의 경계,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소수자들의 삶. 그걸 보고 공감이 되고 가슴이 아리고 눈물 흘렸다는 대중들의 공감력. 내가 정말 이상한 건가?”
김 기자는 “오늘도 식당에서 아들의 음성발화(사실상 괴성이지만)에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으로 우리 가족은 수천발의 비수를 얻어맞고 왔다. 내 아들은 어떤 증명을 해야 하는 걸까”라면서 “살아가기 위해 증명을 해야 한단 사실은 정말 참혹스럽다. 이런 콘텐츠들이 무의식적으로 비장애-발달장애 가족들에게 심어주는 이미지화. 난 그게 참 두렵다”고 했다.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
이렇게라도 많이 등장하고 많이 나오고 많이 접할 기회가 있어야 일상화가 된다. 그래, 동의한다.
그런데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다른 형태의 콘텐츠들은 기본적으로 판타지가 전제다. 아무리 현실을 기반으로 한 얘기라고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다.
이상한변호사우영우 가 인기다. 나도 봤다. 흥미로웠고 재미 있었다. 하지만 우려가 더 크다. 특히 3화를 보면서 더욱 더 그 우려가 컸다.
“80년 전만 해도 발달장애는 살 가치가 없던 존재 중 하나였다….지금도 의대생이 죽고 발달장애인이 산 것은 국가적 손실이란 댓글에 ‘좋아요’가 쏟아진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장애의 무게다.”
유해한 장애인과 무해한 장애인, 이 얘기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판타지의 세계에서 또 다른 여러 비장애인들에게 무해한 장애인으로서 존재할 기회와 가치를 얻은 우영우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난 아직도 이런 드라마와 이런 영화들이 여전히 교묘하게 나쁜 악의를 품고 있다 확신한다. 발달장애인을 떠나 소수자들의 얘기를 할 때 꼭 무조건 전제로 따라 나오는 강박적 편향. ‘너희가 너희 존재를 인정 받기 위해선 너희가 다수에게 무해하단 걸 증명해야 한다’란 것. 삶이란 게 살아간다는 게 누군가에게 증명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는 것인가. 그런 건가. 도대체 언제부터?
언제나 그랬다. 소수자들의 얘기, 우선 나와 관련된 발달장애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영화나 드라마가 그런 얘기를 할 때. 특별하고 또 특별한 소수자들의 소수자를 내세워 그들의 일반화를 전한단 어불성설이 자꾸만 반복되는 것에 사실 진절머리가 난다. 드라마란 판타지가 그럼에도 ‘발달장애’를 내세워 대중의 인식 변화를 노린단 점. 감사하다. 고맙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같은 패턴 같은 방식 같은 노림수. ‘그들의 다름은 그들의 특별함’이란 얄팍한 작법.
“인간은 정말 오묘한 것 같다. 한 쪽이 퇴화되면 다른 한쪽이 특출 나게 발달되니 말이다. 엑스맨도 사실 그렇게 보면 발달장애인이잖아요.”
나와 인터뷰를 했던 한 연예인이 실제로 내 앞에서 한 말이다. 이게 비장애인들이 이런 콘텐츠를 통해 받아 들여지는 발달장애의 한계다. 비단 발달장애뿐만 이겠나. 모든 소수자에 대한 얘기에서도 통한다. 조각처럼 멋진 부잣집 게이, 사회 지도층 인사인 레즈비언, 천재 서번트 증후군 의사, 남자와 여자 모두의 심리를 꿰뚫는 트렌스젠더 독심술가. 그들은 언제나 항상 뭔가 그렇게 특별해야만 존재를 인정 받는다.
유해함과 무해함의 경계,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소수자들의 삶. 그걸 보고 공감이 되고 가슴이 아리고 눈물 흘렸다는 대중들의 공감력. 내가 정말 이상한 건가?
오늘도 식당에서 아들의 음성발화(사실상 괴성이지만)에 쏟아지는 혐오의 시선으로 우리 가족은 수천발의 비수를 얻어맞고 왔다. 내 아들은 어떤 증명을 해야 하는 걸까.
살아가기 위해 증명을 해야 한단 사실. 정말 참혹스럽다. 이런 콘텐츠들이 무의식적으로 비장애-발달장애 가족들에게 심어주는 이미지화. 난 그게 참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