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동안 하루에 한 끼씩 '라면'을 먹은 남자의 최후

2021-08-0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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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성 논란 라면, 영양 균형 나쁘지 않아
매일 라면 먹던 일본 '라면왕' 97세로 영면

픽사베이
픽사베이

라면은 그 명성에 걸맞게 유해성 논란의 대명사다. 짜고 열량이 높고 식품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라는 것.

그런데 선입견을 뺴고보면 라면의 영양 균형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한국인이 많이 먹는 육개장, 각종 찌개류보다 영양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라면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 라면 한 끼에는 일일 섭취 기준치의 20~30%의 영양소가 들어있다. 적어도 영양소가 편중돼 있지는 않다.

나트륨 함량이 지적받긴 하지만 이는 비단 라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주로 먹는 김치, 찜, 탕 요리의 나트륨 함량은 대부분이 라면을 웃돈다. 오히려 나트륨으로 비교하면 라면은 중위권 정도에 속한다.

예를 들어 육개장 1그릇의 나트륨은 3272mg, 칼국수가 2671mg, 냉면이 2622mg, 짜장면과 우동이 2392mg 정도인데 반해 라면은 2000mg 이하다. 굳이 나트륨이 걱정되면 라면 국물을 안 마시면 된다.

라면에 들어가는 다른 첨가물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넣는 밥과 계란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보충해 줄 수 있다. 파나 마늘, 김치 등의 채소를 투입하면 비타민의 섭취를 커버한다.

그러고보면 라면은 오해를 많이 사고 있는 음식인 셈이다.

더쿠
더쿠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 '라면을 하루에 한끼로 매일 먹다가 사망한 남성'이라는 오싹한(?)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일본의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1910.3.5~2007.1.5)를 조명한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안도 모모후쿠 사진 밑에 '라면을 너무 좋아해 평생 하루에 한 끼씩 라면을 꼭 챙겨먹었고 결국 그 부작용으로 2007년 96세(실제로는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섬뜩한 것이 아니라 반어적이고 익살스러운 제목이다.

펙셀즈
펙셀즈

1958년 8월 25일 일본 기업인 안도 모모후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치킨 라멘’을 출시했다.

그는 전후 미국의 원조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일본인이 즐겨 먹는 우동이나 소바를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덴푸라(튀김)에 착안해 라면을 만들었다. 당시 일본 우동은 가업(家業) 수준의 소규모여서 식량난 해소에 역부족이었고 유통기한도 짧았다. 그의 라면은 그 난제들을 일시에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인스턴트 음식이었다.

첫 출시때 개당 가격은 35엔으로 일본인이 즐겨 먹는 우동이나 소바 값의 6배에 달하는 비싼 식품이었다. 그런데 2016년 기준 일본의 라면 소매가는 약 120엔으로 우동 값보다 훨씬 싸다.

훗날 자서전에 그는 '배가 부르면 세계 평화도 이뤄질 것'이라고 썼다. 말년까지 거의 매일 한 끼는 라면으로 해결했다는 그의 사인은 심장질환이었다.

2007년 1월 9일 미국 '뉴욕 타임스'는 ‘라면왕’ 안도 모모후쿠(향년 97세)의 부고 기사 마지막 문단에 이렇게 적었다.

'인스턴트 라면으로 인해 끓인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안도는 인류 진보의 전당에 영원한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수 있다지만, 사람에게 인스턴트 라면을 주면 더 이상 무엇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

고 박병구 할아버지 / 농심
고 박병구 할아버지 / 농심

한국에도 평생 라면을 즐기고도 남들보다 장수한 사람이 있다. 즐기신 정도가 아니라 삼시세끼 라면, 그것도 농심 '안성탕면'만 먹은 고(故) 박병구 할아버지다.

박 할아버지가 라면만으로 끼니를 때우게 된 건 젊은 시절 앓았던 장 질환 때문이다. 1972년 어느 날부터인가 어떤 음식을 먹든 토해버리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라면을 먹으면 속이 확 풀어진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라면을 먹었는데 뜻밖에 편안함을 느꼈다.

라면에 눈뜬 박 할아버지는 여러 라면을 먹어봤지만, 농심 소고기라면만큼 맛있고 속도 편한 라면이 없었다. 그때부터 소고기라면만 고집했고, 이후 해피라면에서 안성탕면으로 이어졌다. 안성탕면이 1983년 출시됐고 해피라면이 1990년대 초반에 단종된 점에 미뤄, 적어도 30년 이상을 안성탕면만 드신 것으로 추정된다.

농심은 1994년 박 할아버지의 소식이 세상에 알려진 뒤 20여 년간 안성탕면을 무상 제공하며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박 할아버지는 지난해 5월 92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home 안준영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