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더할나위 없는 흥행공식, 물음표 남는 캐릭터 (리뷰)
2021-07-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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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군함도' 류승완 감독 신작 '모가디슈'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때 남북한 합동 탈출 실화 모티브
류승완 감독은 영락없는 베테랑이다. 모로코 올로케이션 촬영을 성사시키면서 그 안에서 시각, 청각, 동선적인 부분까지 뭐 하나 놓치질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가디슈'는 잘 안 될 수가 없는 영화다.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등 배우들의 찐득한 연기에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맛있게 느껴지고, 남과 북의 갈등과 화합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매번 반가운 소재, 폭발할 장면에서 터져 주는 액션까지. 관객들에게 어떤 요소가 잘 먹히는지를 잘 알고 적재적소에 배치해 놓은 솜씨가 제법이라 홀린 듯 보게 된다.
'모가디슈'의 배경은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다. UN 가입을 위해 아프리카 외교에 열을 올리던 한국에게 소말리아는 외교적으로 아주 중요한 국가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받아 UN 가입까지 이뤄내려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점차 소말리아에서 발발한 내전으로 핏빛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돼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특히 발군이다. 남북한 대사 역의 김윤석, 허준호는 물론 안기부 출신 참사관 강대진 역의 조인성, 북한 측 참사관 역을 맡아 조인성과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는 구교환까지 누구 하나 빼놓으면 서운할 정도로 구멍이 없다. 대사 사이사이 지시문까지 상상될 정도로 대사가 없을 때도 캐릭터의 심리를 표현하는 열연이 121분 동안 스크린을 수놓는다.
다만 아쉬운 건 캐릭터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한국과 북한의 대사관공관원들이 힘을 합쳐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나 탈출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당시 소말리아 한국 대사였던 강신성은 '모가디슈'에서 한신성이 됐고, 김용수 북한 대사는 림용수로 바뀌었다. 그만큼 캐릭터와 실존 인물의 연결성이 또렷하다.
여기서 의문 부호가 찍히는 건 안기부 출신의 참사관 강대진이다. 실제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한국과 북한의 대사관공관원들은 화합하며 힘을 합쳤다. '모가디슈'는 실화보다 더욱 남과 북의 관계를 긴장감 있게 그렸는데, 안기부 출신 강대진의 투입은 이 갈등을 뚜렷하게 보이게 하는 데 일조한다. 그래서 언뜻 도구적인 캐릭터로 느껴진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강대진이 독재 정권 하에서 시민들에게 여러 악행을 저지른 안기부 출신이며, '모가디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라는 데 있다. 자칫 안기부 미화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류승완 감독은 주 소말리아 한국 대사관 서기관 공수철(정만식)이 끈질기게 강대진을 싫어하는 설정을 넣었다. 내전으로 시민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황을 보던 공수철이 "우리나라에서도 멀쩡한 대학생들 잡아 들여서 빨갱이로 몰아 죽이지 않았느냐"며 안기부와 독재 정권의 악행을 비판하는 장면도 쿠션처럼 등장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왜 안기부여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실제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당시 강신성 전 대사를 도와 탈출구를 모색했던 인물은 현지 교포 이 씨였다.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도 아쉽다. 한국 대사관 사무원인 박지은(박경혜)은 통역 업무를 돕는 정도로, 또 다른 사무원 조수진(김재화)이나 한국 대사 부인 김명희(김소진)는 코믹과 인간미를 슬쩍 불어넣는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북한 대사관이 습격을 당했을 때 참사관 태준기(구교환)가 여성 직원의 치마를 들추는 반란군에게 맞서는 장면은 특히 아쉽다. 여전히 여성 캐릭터를 인물의 정의감을 부각시키거나 인물을 각성시키는 데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성은 완벽에 가깝다. 121분이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그 시대의 상황을 설명하고 갈등이 화합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잘 담아냈다. 특히 내전이 발발하면서 폭발하는 사운드 효과와 극 후반부 카체이싱 장면이 대단하니 아이맥스, 4DX, 사운드 특화관 등에서 관람하길 추천한다.
15세 관람가.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