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서 칫솔 파는 이 할아버지, 알고 보니 서울대 법대 출신이네요 (사진·영상)
2021-04-02 11:10
add remove print link
서울대 법대 66학번 김기두 씨 이야기
“늘그막에 호강시켜 드려야지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법조인을 선발하기 위해 1963년부터 2017년까지 실시했던 '사법시험'. 이는 로스쿨로 인해 폐지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꼽혔다.
이러한 가운데 50년 넘게 사시 공부를 한 서울대 법대생 출신의 70대 남성의 사연이 재조명되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최근 뽐뿌, 개드립, 에펨코리아 등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칫솔 팔던 노인의 정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여기엔 2018년 4월 6일 TV조선 '구조신호 시그널'에서 소개된 '50년 고시폐인' 김기두씨의 방송 출연 캡처 사진이 담겼다.
당시 제작진은 저녁 퇴근길 러시아워 시간, 2호선 지하철에 늘 나타난다는 70대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아무렇게나 얹어놓은 듯 삐뚤어진 가발과 깨지고 더러운 안경, 손가락을 꽉 조여 손가락 변형까지 일으킨 수많은 반지 등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30년 전부터 2호선 서울대입구역을 중심으로 칫솔 행상을 해왔다는 이 노인에게는 단속반에게 불법판매 행위와 악취로 단속을 당하는 일이 몹시 익숙해 보였다.
그는 지하철 내에서 칫솔을 판 돈과 동문들의 법률 사무실을 돌며 받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의 정체는 50년 넘게 고시의 늪에 빠진 66학번 서울대 법대생이었다.
지금도 매일 영자신문을 읽고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재로 쓰이는 영어원서를 술술 해석하는 김기두씨는 재학 당시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할 만큼 우수한 실력의 인재였다.
하지만 사법시험은 물론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도전하는 시험마다 매번 아쉽게 탈락한 채 10년이 흘렀고, 그 상실감으로 30대부터 조현병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왕족이며 언제나 도청과 암살의 위험에 놓여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씨의 집안은 과거 지방에서 매우 유복하고 뼈대 있었지만, 그의 사법시험 뒷바라지를 위해 전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 아내와도 이미 40년 이혼한 상태이며 딸과 아들도 만나기를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쓰레기로 가득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고시원으로 돌아온 김씨는 매일 편의점 햄버거 등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그는 "모친은 제 고시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서울에 오셨는데, 결국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면서 "늘그막에 호강시켜 드려야지 했는데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대학 후배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은 후 그를 찾아 이야기를 나눈 박찬종 변호사는 "우리나라 고시 낭인들의 기본 문제가 김기두씨에게 함축돼 있다고 본다"면서 "(불분명한) 확률과 가능성만으로 계속해서 시험을 보는 것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버리는 꼴"이라고 전했다.
해당 게시물을 접한 누리꾼들은 "운명에 없는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게 정답인데... 저 할아버지와 그 부모님들은 모르겠다" "엄청난 부담감과 압박감이 조현병으로 연결되는 케이스가 방송에 가끔씩 나오더라" "도박 같은 중독이네" "답답하고 뭔가 슬프다" "지금도 서울대입구역에 가면 가끔 보이는 분" 등의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