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탓에 홈쇼핑 상품으로까지 등장했던 그 아파트의 근황
2021-02-2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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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건설의 아픈 손가락,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회사 상폐 단초 제공… 작년말 11년만에 미분양 털어
"고객 여러분! 9억원짜리 최고급 새 아파트를 전세금 1억5000만원만 내고 3년간 살 수 있습니다. 살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계약 철회 가능하고 전세금도 다 돌려드립니다. 사는 동안 관리비는 시공사가 모두 내주고, 매달 최고 170만원씩 연금까지 드립니다. 모든 가구에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 완벽 구비돼 있으니 몸만 오시면 됩니다."
두산건설이 2013년 6월 홈쇼핑 채널인 CJ오쇼핑에 매물로 내놓은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일산 제니스)' 아파트의 분양 조건이다. 입지나 여건이 나빠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듯 보이지만 경의선 탄현역과 직접 연결되는 초역세권 입지에 최고 59층, 2700가구 규모의 국내 최대 주상복합아파트였다.
그럼에도 아파트가 홈쇼핑에 상품으로 등장한 것은 대거 미분양이 났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보다 1년 이상 늦춰진 2009년 1·2순위 청약에서 단지는 2693가구 모집에 282명이 지원, 0.11대 1의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 3순위 청약 때는 분양자에게 순금 기념품과 명품 핸드백, 지갑, 넥타이까지 안겼지만 최종 청약률은 36.1%에 그쳤다.
이후 3년 여간 분양가 하향을 포함해 각종 무상혜택을 제시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결국 홈쇼핑에 SOS를 친 것이었다.
흥행 참패의 원인은 입지 영향이 컸다. 단지는 일산신도시가 아닌 탄현동에 자리잡고 있다. 일산보다는 파주에 가까운 입지가 수요자들에게 걸림돌이었다. 단지 바로 옆에 모텔들이 들어서 있는 점도 문제였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경기가 가라앉은 점도 미분양을 부채질했다.
두산건설이 단지의 미분양 털기에 사활을 건 것은 회사 유동성 악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일산 제니스는 두산건설 나아가 그룹의 명운을 갈랐다.
악성 미분양으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두산건설은 2011년 이후 매년 당기순손실을 찍었다. 한때 차입금이 1조5000억원에 달할 정도고 빚이 많다 보니 번돈으로 이자조차 못갚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유동성 악화는 두산중공업 등 그룹 전체로 번졌다. 두산건설은 결국 지난해 말 상장 23년 만에 상장폐지됐는데, 일산 제니스가 부실의 단초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전국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11년 동안 불꺼진 아파트라는 오명을 안고 있던 단지는 2009년 분양을 시작한 지 11년 만인 지난해 12월 분양마감에 성공했다.
최근 고양시의 아파트값이 뛰면서 일산 제니스도 몸값이 올랐다. 지난달 실거래가격은 전용면적 94㎡ 48층이 7억2000만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