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입니다… 이 콧수염 여자가 '페르시아 최고의 미녀'였습니다 (영상)
2020-12-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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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이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인물
1936년 53세로 사망…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
현재 미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19세기 페르시아 절세 미녀와 그녀의 삶을 둘러싼 이야기가 국내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더쿠, 인벤, 에펨코리아, 루리웹, 오늘의 유머 등 국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페르시아 최고의 미녀’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에는 19세기 당시 페르시아 최고의 미녀로 칭송받았던 타지 에스 살타네(Tadj es-Saltaneh) 공주의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1883년 지금의 이란 테헤란 지역에서 태어난 타지 공주는 당시 페르시아를 지배했던 카자르 왕조 왕의 11남 10녀 중 8번째 딸이었다. 당시 그녀는 페르시아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로 이름 높았다.
타지 공주는 살아생전 전국에서 145명의 남성에게 청혼을 받았는데, 이 중에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부자와 유명인들이 포함돼 있었다. 청혼을 거절당한 사람 중 13명은 절망이 큰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였다.



그녀가 이렇게 인기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추구하던 미인의 기준에 그녀가 딱 부합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은 남자가 안았을 때 뱃살 때문에 팔이 다 둘러지지 않을 만큼 뚱뚱하고, 얼굴이 크고 몸에 털이 많아야 미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타지 공주는 풍만한 몸매와 큰 얼굴, 그리고 누구보다 짙은 눈썹에 콧수염까지 나 있었기 때문에 당대 최고의 미녀로 손꼽힐 수 있었다.




이처럼 독특한 페르시아의 미적 기준은 당시 후궁들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위 사진들에는 타지 공주와 비슷한 외모의 후궁들이 당시 궁궐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러나 타지 공주의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이유는 그녀가 단순히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이란의 전근대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그 당시 개화기를 맞이하던 페르시아. 타지 공주의 아버지이자 왕인 나시르 앗딘 샤는 페르사아 최초로 서양문물을 도입하는 등 개혁에 힘쓴 사람이었다. 그러나 서양식 교육과 신문물 등의 혜택은 언제나 남성과 일부 왕족 여성만 누릴 수 있었다.
타지 공주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여성 인권 향상에 앞섰다. 그녀는 1910년 ‘여성 자유 협회’를 창립했고, 결혼 이후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이혼을 감행하는 등 사회적 굴레를 거부했다.
또 당시 이슬람 사회에서 강요했던 복장과 여성 억압의 상징인 ‘히잡’을 벗어던지기도 했다. 그녀는 페르시아에서 서양식 복장을 입은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실제로 당시 그녀의 사진을 보면 발레복을 비롯해 서양식 복식을 입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타지 공주의 후손들인 이란의 여성들. 이들은 이슬람 국가에 살고 있음에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고, 운전도 할 수 있는 등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살고 있는데 이런 여성들의 인권이 향상된 데에는 타지 공주의 영향이 컸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현재 이란에서 역사적 인물로 회자되며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다.
소문난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아름다웠던 타지 에스 살타네 공주는 1936년 53세의 나이로 사망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자히로드 홀레 묘지에 묻혔다.
이런 그녀의 사연을 접한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 회원들은 댓글을 통해 “미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나도 저 때 태어났으면 미인일까” “알고 보니 멋진 사람이다” “지금 봐도 예쁜 것 같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