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으로 나눈 나와의 적나라한 성적대화,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사용했더라”
2020-07-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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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소설 ‘그런 생활’ 논란
“내가 소설 속 C누나입니다” 등장
커밍아웃을 한 소설가 김봉곤씨의 작품 단편소설 ‘그런 생활’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여성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고스란히 담아 해당 여성이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계간 문학잡지 문학과사회에 발표한 이 소설로 올해 초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5월 창비에서 출간한 소설집 ‘시절과 기분’에 이 작품을 수록했다.
‘그런 생활’에는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남자와 섹스에 관한 문제라면 내게 숱한 조언을 해주었던 선배’인 C누나가 등장한다.
게이인 주인공은 C누나와 카카오톡으로 적나라한 성적 표현이 등장하는 대화를 나눈다.
이와 관련해 자신이 소설에 등장하는 C누나라고 밝힌 여성은 최근 트위터에서 “독자들은 이 사람(C누나)을 가상 인물이나, 소설적으로 변형된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가 바로 그 ‘C누나’다. C는 제 이름의 이니셜이고, ‘그런 생활’에 실린 ‘C누나’의 말은 제가 김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실을 발견했을 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시절과 기분’이 총 7만부 배포돼 있었고 김 작가와 나를 동시에 아는 사람 모두가 C누나가 나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내용 수정, 젊은작가상 수상 취소를 요청했는데 원고 수정만 하고 수정 사실을 공지해달라는 요청은 무시됐다. 또 심사결과에 영향이 없다는 문학동네 측의 공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에 바닥 깔개로 이용된 기분, 강제로 출연 당해 작가의 밑에 엎드려 깔린 기분”이라고 항의했다.
‘그런 생활’이 일으킨 파문은 문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3대 문학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 창비, 문학동네가 얽힌 사건이기 때문이다. 문학과사회는 문학과지성사가 발간하는 잡지다.
여성은 “문학과지성사만 내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사건을 알고는 온라인 열람 서비스를 삭제해줬다”고 했다.
<여성이 트위터에 올린 글>
「그런 생활」에 실린 제 문장의 분량은 원고지 약 10매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발견했을 당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시절과 기분』 약 7만 부(전자책 제외)가 배포되어 있었고, 김봉곤 작가와 저를 동시에 아는 사람들 모두가 작품 속 ‘C누나’가 저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김봉곤에게 처음부터 항의했고, 김봉곤은 수정을 약속했습니다. 김봉곤 작가는 2019년 5월, 「그런 생활」을 발표하기 전, 제게 작품에 저를 등장시켜도 될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어느 정도 가공을 하리라고 예상하고 그래도 된다고 답했습니다.
송고한 후 원고를 보여주어 「그런 생활」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김봉곤 작가가 제 말을 띄어쓰기 하나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쓴 것, 우리가 했던 많은 대화 중 성적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고대로 쓴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김봉곤 작가에게 항의했고, 김봉곤 작가는 수정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김봉곤 작가는 수정하지 않고 『문학과사회』(2019년 여름호)에 이 작품을 발표했고, 이 작품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김봉곤 작가에게는 문장을 고칠 기회가 적어도 세 번 있었습니다. 『문학과사회』 인쇄 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출간 전, 그리고 『시절과 기분』 출간 전.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벌어진 뒤에도 스스로 수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수정이 되지 않았음을 인지한 2020년 5월부터 김봉곤 작가에게 이 일을 항의했습니다. 글을 고쳐 달라고 요구하고, 이런 일은 건강하지 않다고 피력하고, 나중에는 이 일로 제가 느낀 수치심을 말하며 애원했습니다.
출판사 홈페이지를 통한 사과가 어려우면 개인 SNS를 통한 사과라도 해주기를 요청하고 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김봉곤 작가는 무시했습니다. 제가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에야 김봉곤 작가는 원고를 수정했으나, 원고 수정 사실을 공지해달라는 제 요청은 지금까지도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문단은 이 사건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학 전공자이자 출판편집자로 10년간 이 업계에 몸담아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이 업계에, 그를 동시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 예전처럼 지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 명 한 명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문학동네와 창비는 이 문제를 공문으로 받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이 김봉곤 작가 혼자 이행하기 힘든 일이라 판단해 출판사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문학동네와 창비는 그를 출연시켜 책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런 생활」의 발표 지면이었던 『문학과사회』의 문학과지성사는 제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사건을 알고는 온라인 열람 서비스를 삭제해주었습니다.
저는 문학동네에 젊은작가상 수상 취소를 요청했습니다. 문학동네 경영지원실은 저에게 “심사위원들은 심사결과에 영향이 없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이라는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김봉곤 작가를 사회적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될까 봐, 다른 젊은작가상 수상작가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출판사가 곤란해질까 봐 출판금지가처분 신청과 같은 법적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약속을 지켜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일의 내용을 전부 알고도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문단에는 적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대, 한국문학의 미래라 불리며 독자들의 칭송을 받는 젊은 작가와 비평가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제 요구는 멍청하고,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실존하는 C누나는 소설의 깔개가 아닙니다. 김봉곤 작가는 소설가이자 편집자이자 퀴어입니다. 성 인지 감수성과 저작권의 개념을, 영감과 도용의 차이를 논의하지 않아도 잘 알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저의 친구였습니다.
저는 김봉곤과 매우 가까웠던 사이로서, 이 사건으로 인해 김봉곤 작가가 자신의 ‘당사자성’이 폭력적일 수 있음을 깨닫고, 진정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말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계기로 삼길 바랐습니다. 제 좌절의 대가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기능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김봉곤이 ‘C누나’ 캐릭터를 창조했다면, 혹은 내 목소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포괄적인 얘기로 고쳐 썼다면 우리는 여전히 친구일 것입니다. 2019년 「그런 생활」 원고를 제게 처음 보여주고 제가 항의했을 때, 김봉곤 작가가 빼겠노라 약속했던 문장만 뺐어도 우리는 간신히 친구일 것입니다.
그러나 토씨 하나, 띄어쓰기 하나 바꾸지 않은 제 카톡 메시지는, 보시면 아시겠지만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문장이 있습니다. 작가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글을 쓰듯, 평범한 사람 또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함부로 다뤄지지 말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아 마땅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 균형이 강제로 깨어져 박제된다면, 누군들 고통받지 않을까요? 저는 목표점에 제대로 닿지 못한 소설에 바닥 깔개로 이용된 기분, 강제로 출현 당해 김봉곤 작가의 밑에 엎드려 깔린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김봉곤의 글쓰기와 응대는 저를 시시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출판사와 문단과 독자들을 옆에 끼고 저를 작고, 약하고, 이기적이고, 사라져 마땅한 존재로 대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김봉곤 작가가 또다시 자신의 다음 소설에 작위적으로 서술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낍니다. 저는 김봉곤 작가의 지척에 있습니다. 서점에서, 신문에서, 지인들의 SNS에서, 일터 근처에서 강연회를 열고 인터뷰를 하는 그를 매일 마주하고 소스라칩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다고, 이 소설과 나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 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할 지경이 되어 찾아간 병원의 서가에서조차도, 저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열린 공간에서 묻고 싶습니다. 소설이란 마땅히 그런 것이고, 이렇게 쓰여진 과정을 독자들은 몰라도 되는 것이 맞는지를요. 김봉곤 작가의 소설 속에 영원히 박제된 저의 수치심이 김봉곤 작가의 ‘당사자성’과 ‘자전적 소설’의 가치보다 정말, 못하고 하잘것없는 것인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