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임요환, 페이커 탄생을 꿈꾼다

2020-07-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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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업계, 최근 과거 향수 자극한 IP 활용 시장 선점 나서
위정현 교수 “기존 IP 재활용, 지속 가능 관점에선 자멸의 길”

2000년대를 주름잡던 게임 '바람의 나라'와 '포트리스'
2000년대를 주름잡던 게임 '바람의 나라'와 '포트리스'

최근 트로트 열풍이 대단하다. 7080세대를 놓고 보면 임영웅의 인기가 그룹 방탄소년단(BTS)에 버금갈 정도다. 번화가에서 1990년대 유행한 복고패션을 마주하는 것이 마냥 어색하지 않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실감된다.

3년 전 ‘아프리카TV 스타리그’에서 ‘최종병기’ 이영호와 ‘폭군’ 이제동이 오랜 만에 공식전을 치렀다. 경기장인 프릭업스튜디오 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온라인에서도 20만명 이상 시청자가 모여들어 서버가 일시 다운됐다. 2000년대 추억이 미래를 자극하는 진풍경이었다. 테란, 저그를 대표하는 종족 최강자 두 명이 만난 ‘리쌍록’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짧다면 짧은 국내 IT·게임 업계 역사에서도 이처럼 먹고살 추억이 꽤 있다. ‘디아블로’ CD 한 장으로 또 다른 세계를 정복하던 시대가 있었다. 혹자에게 2000년대 ‘택진이 형’은 빌 게이츠, ‘황제’ 임요환은 리오넬 메시였다.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한 10만명은 부산 광안리에 모여 ‘게임은 스포츠’를 외쳤다. 오락실에서 동전을 쌓아놓고 ‘철권’과 ‘메탈슬러그’로 하루를 지새우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였다.

이 과정에서 3N(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은 굴지 기업으로 커졌고 게임은 문화,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제2의 ‘스타크래프트’ 개발을 꿈꾸며 많은 게임사가 봇물처럼 뜨고 졌다. 그 사이 펄어비스 ‘검은사막’이나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 등이 태동했다.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이 됐고, 현재의 페이커(이상혁)가 탄생했다.

중국 텐센트는 SNK와 협업해 '메탈슬러그'를, 일본 디엔에이는 '슬램덩크'를 모바일로 출시한다.
중국 텐센트는 SNK와 협업해 '메탈슬러그'를, 일본 디엔에이는 '슬램덩크'를 모바일로 출시한다.

2020년 현재, 게임 업체들은 과거 향수로 유저들을 유혹한다. 타깃은 해마다 커지는 모바일 시장. 최근 중국 텐센트는 ‘메탈슬러그’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SNK와 협업해 ‘메탈슬러그 모바일’ 제작을 예고했다. 일본 디엔에이(DeNA)도 90년대 최고의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를 모바일 게임으로 제작, 7일까지 사전예약을 진행하는 등 국내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국내 게임 업체도 유사한 행보를 달린다. 넥슨은 1996년 출시한 ‘바람의 나라’를 모바일로 녹여냈고, 엔씨소프트는 2004년 개발한 ‘팡야’ 모바일 버전을 내년에 선보인다. 팡스카이는 2000년대 국민 게임 ‘포트리스’ IP를 통해 1000만명의 추억을 복기한다. 선데이토즈는 ‘애니팡’을, 그라비티는 ‘라크나로크’를 다시 소환했다.

정리해보면 PC만큼 모바일 게임 시장 덩어리가 커지자, 게임 업체들이 과거 PC에서 활용한 IP를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얘기다. 유저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익숙한 IP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까지 가능해 회사 입장에선 반색할 노선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은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의 재탄생을 지연하게 할 공산이 크다. 전문가 생각도 비슷하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학회장 겸 중앙대 교수는 “게임사가 신규 IP 개발보다 성공한 기존 IP를 PC에서 모바일로 재활용하는 것은 주가, 매출 등 사업성 측면에선 바람직한 전략”이라면서 “장기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멸의 길”이라고 말했다.

임요환(좌), '페이커' 이상혁(우) / 뉴스1
임요환(좌), '페이커' 이상혁(우) / 뉴스1

위 교수는 “‘스타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등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그간 e스포츠에서 선전했다”며 “RPG 등 모바일 게임도 e스포츠용 게임으로 따로 개발하거나 변형하는 등 공격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모바일 게임은 인터페이스 문제로 e스포츠화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터치 기반의 모바일 게임은 자동 기능까지 겸해 마우스, 키보드로 손기술을 구현한 PC보다 기술력에서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스타크래프트’로 e스포츠가 탄생했고, 2010년대 ‘리그 오브 레전드’가 그 바통을 넘겨받아 e스포츠 문화의 무게중심을 이루고 있다. e스포츠 아이콘은 임요환에서 페이커로 바뀌었다. 국내 게임 개발사도 ‘배틀그라운드’ ‘서머너즈 워’ 등으로 e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타’ ‘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

앞서 언급했듯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2020년 현재 우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먹고 산다. 또,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먹고 산다. ‘포트리스’ ‘메탈슬러그’를 그리워한다. e스포츠 종주국 명맥을 이어갈 게임보다는 기존 IP 기반의 모바일 게임들이 쏟아진다. 이러다 ‘배틀그라운드’가 먼 미래에 유일한 추억이 될 수도 있다.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좋다. 다만 게임회사의 본업은 IP 재활용보다 ‘개발’이다. 위 교수 제언대로 자멸의 길을 걷는 대신 제2의 임요환, 페이커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home 김성현 기자 stor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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