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전화한 시누이 “죽고 싶다”... '수사관'이 된 1살배기 아기 엄마
2017-11-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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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애인인 시누이는 친구에게 속아 성노예로 팔려갔다
경기도 이천에서 돌쟁이 아기를 키우던 평범한 엄마 최서윤(22·가명) 씨는 지난 두 달 동안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사연이지만, 최 씨에겐 현실이다. 잘 모르고 지내던 시누이 사연을 알게 되면서다.
결혼 2년차인 최 씨는 시누이 정수연(22·가명) 씨와 가깝지 않은 사이였다. 결혼 후 딱 두 번 만났다. 제일 길게 만난 시간이 20분, 명절 때도 10분 남짓 인사만 한 게 전부였다. 시누이는 어딘가에서 친구와 같이 살고 있다고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지난 9월 24일 밤, 최 씨 남편은 낯선 번호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시누이였다. 시누이는 남편에게 "너무 힘들다. 잠도 안 오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
시누이 정 씨는 5살 무렵부터 지적 장애가 의심되는 상태였다. 시댁 식구들은 그런 정 씨를 챙기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때부터 정 씨는 왕따 등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시누이는 고교 1학년때 자퇴했고, 20살쯤엔 아예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후 3년 동안 시누이는 수시로 전화번호를 바꿨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오면 시누이이겠거니 했다. 시아버지는 매달 어딘가로 돈을 부쳤다. 최 씨는 시누이 정 씨가 어딘가에서 쓴 돈을 갚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정 씨가 도용당한 개인정보로 피해 본 대포폰과 대포차 보상금 등을 갚고 있는 것이었다.
시누이 정 씨는 집을 나간 뒤 강원도 원주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소위 '친구들'과 함께 지냈다. 동네에서 어울려 지내던 이들이었다. 옷 사업을 하자던 친구 A씨와 그의 지인들은 정 씨에게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 돈 쉽게 벌게 해주겠다"며 성매매를 시켰다. 성매매가 무슨 일인지 몰랐던 정 씨는 '친구'가 시킨 일을 거절할 줄도 몰랐다.
처음에는 강원도 원주 인근에 있는 노래방만 다니다가 점점 일이 커졌다. 정 씨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 등에 있는 노래방, 골프장, 여인숙으로 팔려 몸을 팔았다.
정 씨는 친구 A씨와 늘 연락을 주고 받았다. A씨와 한통속인 것으로 보이는 A씨 엄마라는 사람과도 연락을 주고 받았다. 대화 내용은 "어디냐", "얼마를 받았냐", "돈을 숨겨라",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삭제하라"는 게 대부분이었다.
최 씨는 "시누이는 친구라고 믿었겠지만, 누가 봐도 '주인과 시종' 관계였다. 가해자 A씨 등은 시누이에게 억지로 성매매를 시키고 그 돈을 빼앗았다"며 "하루 평균 1~2차례 정도 성매매를 한 뒤 화대(성매매 대가로 받은 돈)를 받아 친구에게 넘겼다"고 말했다.
그는 "화대는 하루 평균 30만 원 정도 였다고 한다. 3년 동안 그러느라 가족과 연락도 안됐다"고 말했다. 시누이 정 씨는 성매매로 돈을 벌어오지 못한 날에는 구타에 시달렸다고 했다.
"같은 여자로서 참기 어려웠다."
지난 9월 24일 밤 걸려온 전화로 시누이 사정을 알게 된 최 씨는 분노했다. 최 씨는 다음날인 25일 시누이 정 씨 손을 잡아 끌고 경찰서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경찰은 무성의했다. 최 씨에 따르면, 경찰은 최 씨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람 말을 어떻게 믿냐. 장애인이라는 증명 서류와 증거를 가져오라"라고 말했다.
최 씨는 "나는 전날까지 한살짜리 아이를 키우던 엄마였다. 대뜸 증거를 수집해오라니 당황스러웠지만, 나 말고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기 분유값과 기저귀값만 해도 빠듯한 살림에 최 씨는 사비를 털어 증거자료를 수집했다. 지난 9월 말 그는 시누이가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찾아 사설업체에 복구해달라고 했다. 복구 비용하는 데만 수십만 원이 들었다. 복구한 휴대전화 파일에는 시누이와 그에게 성매매를 시킨 A씨 모녀가 나눈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장애 진단을 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지난달 12일 최 씨는 병원에서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 정 씨를 달래며 겨우 상담을 받았다. 의사는 "정 씨가 '돈', '친구'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갑자기 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면담) 수행이 어려워 10분 가량 휴식 후 재개했다"고 했다.
증거자료를 모으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으니 지난달 19일이었다. 한 달 가까이 걸린 셈이다. 생계를 담당한 남편도 잠시 일을 쉬어야 했다.
최 씨는 지난달 12일 다시 경찰서에 방문했다. 이제 됐다 싶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찰은 서류를 쭉 훑어보더니 "정식으로 장애인 등록을 해오면 지적 장애인 대상으로 수사해주는 기관으로 넘겨준다"고 했다. 최 씨는 "한 달에 걸쳐 모은 증거자료와 장애 진단서를 들고 간 경찰서에서 보낸 시간은 단 3분이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그 길로 동사무소로 달려가 장애인 등록을 신청했다. 정 씨는 '지적장애 2급'에 해당했다.
"증거 자료는 경찰들이 수사 중에 밝혀낼 일입니다. 지적 장애인에게 '증거물 없으면 수사 못한다' 이렇게 말하는 게 올바른 일인가요?"
참다 못한 최 씨는 지난달 21일 국민 신문고에 긴 글을 올렸다. 시누이 정 씨가 겪었던 일, 경찰서에 찾아갔지만,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일들을 다 적으며 "제발 수사해달라"고 적었다. 국민 신문고에서 경찰로 전달되는 행정 절차에 다시 열흘이 걸렸다. 지난달 30일 경찰 측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은 "수사과를 대표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소장을 정식 접수했다. 이미 상처받은 최 씨 마음을 위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최 씨는 "저는 굉장히 평범한 서민이다. 만약 제가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이었다면, 경찰 태도가 달랐을 게 분명하다"며 "지적 장애인들은 경찰 도움도 받기 이토록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경찰 관계자는 위키트리와 통화에서 "시스템상 필요한 안내를 했는데,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경찰서에서는 지적장애인 성범죄가 처음이라 해바라기센터 등 관련 기관을 검색하고 안내를 한다고 했는데,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증거 자료도 있으면 달라고 한 건데, 적극적으로 미리 준비해주셨다. 국민신문고에 문의를 하신 뒤에 국선 변호사와 해바라기 센터를 연계해서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현재 정 씨 사건을 공식 수사 중이다.
최 씨와 최 씨 시누이 사례는 단지 어쩌다 튀어나온 일이 아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에 대한 불기소처분율은 29.7%에 달한다.
기 의원실은 "경찰은 피해자들의 진술 및 증언을 주요 근거로 삼는 관행이 있는데, 같은 방식으로는 발달장애 및 지적장애인을 제대로 수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적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을 전담하는 부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동민 의원은 "수사 과정에서 장애인 성폭행 피해자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부분이 부족하다면, 부실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지속적인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장애인 성폭력 전담 전문인력의 확충 등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성범죄 피해를 본 장애 여성은 수사 기관에 가기 전 성폭력 상담소 등 관련 기관에 의뢰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장애를 가진 피해자를 전담하는 상담소는 전국에 26곳, 일반 성폭력 상담소는 전국에 124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