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다 200만 원" 몰카 유출된 여성들, 삭제 비용까지 홀로 감당
2017-04-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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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대학생 하이선(25·가명) 씨는 자신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락없이 찍힌 영상이었다. 하 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전 남자친구가 앙심을 품고 한 짓이었다.
하 씨는 그를 고소했다. 증거가 명확해 형사처벌은 어렵지 않았다. 다음이 문제였다. 인터넷에 퍼진 영상을 지워야 하는데, 얼마나 퍼졌는지 감 잡을 수 없었다.
몰래카메라 삭제 대행업체를 이용하기로 했다. 매달 200만 원씩 3개월 계약을 맺었다. 지워도 또 올라오기 때문에 기간을 연장해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 빚을 갚기 위해 하 씨는 현재 휴학 후 돈을 벌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피해는 유포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이선 씨 경우처럼 영상 삭제 문제로 지속적인 경제적,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인터넷에 유포된 개인 성관계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구가 2014년에는 1404건, 2015년에는 3636건, 2016년에는 7325건으로 점점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해를 거듭할 때마다 약 2배씩 늘어난 셈이다.
관계자는 "국내 사이트는 영상 삭제가 가능하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는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해외 사이트는 특정 게시글에 대해 국내 사용자가 접속하는 걸 막는 형태로 조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 정보 삭제 대행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 김호진(47) 대표는 "디지털성범죄 자료 삭제 비용은 달마다 100만 원부터 300만 원까지 금액이 다양한 편"이라며 "영상이 퍼진 추이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3개월이 계약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업체들도 편차가 있지만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영상이 여러 국가에 퍼졌을 경우엔 비용이 두세 배로 올라간다.
대행 업체들은 보통 영상을 감지하는 특수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하지만 영상이 변형된 경우엔 작업량이 많아진다. 김 대표는 "직원 한 명이 하루에 담당할 수 있는 영상이 두 건 내지 세 건 정도"라고 말했다.
김호진 대표는 "10대 청소년 문의가 특히 많이 들어온다"라고 했다. 그는 "10대 청소년은 부모에게 말하기 힘든 상황인 것을 알기 때문에 사회봉사 20시간을 채우고 오면 돈을 받지 않고 지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 서버를 둔 일부 음란동영상 사이트는 피해자가 영상 삭제를 요구하면 되려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모 사이트는 일반인은 200만 원, BJ는 350만 원까지 부르기도 한다"며 "그들은 법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돈도 비트코인이나 머니그램으로 받고 있다"고 했다.
가해자에게 삭제 비용을 청구할 수 있진 않을까. 가해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돈은 형사상 '합의금'과 민사상 '손해배상금'이다.
문제는 몰래카메라 범죄 가해자가 어리거나 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법률사무소 나은 정병주 변호사는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돈을 줄 능력이 안 되니까, (합의금 없이) 그냥 처벌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처벌은 처벌이고,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별도로 걸어야 한다"며 "손해배상금을 받아도 영상 삭제 비용을 완전히 감당하기엔 무리"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긴 재판을 거치다보면 영상은 인터넷에 확산돼버린다.
영상을 지워도 안심은 금물이다. 직장인 박경이(28·가명) 씨는 "디지털 성범죄를 당한 친구가 가해자에게 받은 합의금으로 대행업체를 이용했다. 한동안 영상이 올라오지 않아 안심했다"며 "하지만 좀 지나고 나니까 다시 올라오더라"라고 했다.
박 씨는 "피해자가 자기 돈을 써가며 영상을 막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라며 "국가가 나서서 디지털 성범죄 영상 삭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상황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안되고 있다. 여성가족부 권익정책과 최혜민 사무관은 "지난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해 (영상 삭제 비용 등을 목적으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국회 최종 예산 심사 과정에서 통과가 안 됐다"고 말했다.
최 사무관은 "우리 역시 피해자에게 동영상 삭제 비용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해당 예산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여성의전화 조재연 인권정책국장은 "피해자는 촬영물을 지우는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느낄 것"이라며 "디지털성범죄같은 경우는 예산뿐 아니라 처벌이나 규제 면에서도 제도적 공백이 많다. 과거 '소라넷'과 같은 불법 음란 사이트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법안 역시 함께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