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연합' 홍승희 인터뷰

2016-01-1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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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예술가네트워크 홍승희(27) 씨 / 뉴스1 지난 6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

청년예술가네트워크 홍승희(27) 씨 / 뉴스1

 

지난 6일 오후 4시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평화의 소녀상' 앞. 대학생 한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 지난달 28일 타결된 한·일 위안부 협정에 반대하며 일주일째 농성 중이었다. 

멀리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60~70대 남성 수십 명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6·25 참전유공자회', '해병대 전우회',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등. 저마다 다른 문구가 새겨진 옷과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 보수단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 회원들이었다. 

소녀상 일대가 순간 혼잡해졌다. 어버이연합 회원들과 학생들 간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그때였다. 하얀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여성이 팻말을 들고 두 무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팻말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다.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여성의 이름은 홍승희(26) 씨. '어버이연합'을 풍자한 '대한민국 효녀연합(이하 '효녀연합')' 소속이라 밝힌 그녀는 곧장 화제가 됐다. 지난 11일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카페에서 홍 씨를 만났다.  

'대한민국 효녀연합', 진짜 있나?

아니다(웃음). 내가 활동하는 단체(청년예술가네트워크)는 수요집회가 끝나면 짧은 공연을 한다. (피켓 시위를 벌인) 6일은 첫번째 순서가 우리였는데, 마침 어버이연합에서 집회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서 '어버이연합'처럼 단체 하나를 만들어 퍼포먼스를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어버이연합들의 이런 행동이 '인간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소녀연합 등 여러 이름을 고민했다. 결국 '효녀연합'으로 정했다. 어떤 체계적 조직이 아닌 '퍼포먼스'였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더라.  

어쨌든 상당히 화제가 됐다. 

반응이 좋아 기뻤다. 예전에 개인적 사정으로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 최후 진술 당시 꼭 하고픈 말이 있었다. '아이들이 물에 빠졌으니 구해야한다'고. 근데 못했다. 그래서 (당시 들고 있던) 피켓 안에 그 말을 담았다. 그걸 본 꽤 많은 분들이 고맙다는 응원 메시지를 보내줬다. 

'어버이연합' 회원들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는 전쟁의 상처로 생긴 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분이 많다. 이런 분들은 마음 속에 과도한 사명감이 있다. 하나의 바른 역사가 필요하고, 본인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버이연합'이 그렇다. 

(집회에 나온 '어버이 연합' 회원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는데. 저희도 다 우리 국민들 다치지 않길 바라는 심정으로 여기 나온거 아닌가. 그래서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소녀상 앞이 평화롭고, 조용할 수 있게 예의를 지켜달라고 했다. 서로 입장이 다르지만 존중해달라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처럼. 

아버지가 보수적 성향이 강하셨나 보다. 

군무원이셨다. 

현재 '청년 예술가 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이라고 들었는데. 

작년부터 활동했다. 나를 비롯해 예술하는 친구들이 상당히 어렵다. 우리가 직접,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뭉쳤다. (지자체 등에) 관련 정책도 제안하고, 자립 사업도 한다.  

내 인생은 조금 특이하다. 16살 때 중학교를 졸업한 뒤 검정고시를 봤다. 고시를 준비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사람들을 돕는 게 좋았다. 고시가 붙고, 사회복지를 전공할 생각으로 대학교에 갔다. 

2008년 촛불집회가 내 인생을 바꿔놨다. 그때 나는 19살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상당히 삭감했다. 당시 나는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바로 장애인, 아동, 청소년, 여성이다. 

중증장애인들은 집밖에 나오지도 못한다. 하루종일 천장만 보며 산다. 친 언니와 같이 촛불집회에 나가 장애인 이동권 예산과 관련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을 바꾸려면 어떤 활동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결국에는 '정치'가 문제더라. 

'정치' 얘기가 나왔으니 묻고 싶다. 본인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이념 안에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얘기하는 건 보수의 상식이기도 하고, 진보의 상식이기도 하다. 인간 보편의 상식이다. 

인간이 이토록 고통을 받은 역사(위안부)가 있는데 (이를 두고) 어떻게 거래할 수 있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건 상식이다. 안중근과 김구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이야기하면 진보, 종북, 보수, 애국 등의 딱지가 붙는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물에 빠졌으면 구해줘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면 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상조사를 해야한다.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앉지 못하게 해야한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해 지적하면 (진보, 보수) 이름을 붙이는 게 답답하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 포용 등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과 같은 극단적 대립은 전쟁의 상처에 따른 산물이다. 하루 빨리 평화를 안착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20대는 직접 '전쟁의 상처'를 겪지 않았음에도 보수, 우파가 급증하는 모양새다.   

그들 대부분이 극단적 경쟁 속에서 좌절한 사람들이다. 공포, 생존, 불안이 심리적 동기다. 

지금도 경쟁, 학교 폭력 등 소리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두려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들은 민주주의, 다양성, 진보 등을 외치는 애들이 '철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세상을 잘 몰라, 이런 식으로. 

그러다 '(진보가) 집권하면 망해'라는 이상한 애국심과 사명감이 결합된다. '전체주의'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이용자들과 '어버이연합' 할아버지의 심리 상태는 비슷한 것 같다. 공포와 생존. 이런 상황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평화, 사랑이라는 가치를 하루 빨리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혐오가 난무하니 정치가 피곤해진다. 세월호도, 위안부도 피곤해진다. 

나는 이런 혐오 한가운데서 희망과 평화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계속하고 싶다. '헬조선'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저마다 삶의 생기를 회복해야 한다. 그게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인도 여행을 갈 예정이었는데, 위안부 협정 타결 소식을 듣고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 다음달쯤엔 꼭 가고 싶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 

여기서 내가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것이다. 퍼포먼스도 이어갈 거고. 노래 작곡도 하려고 한다. 뱉어내고 싶은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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