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는 게 어렵나요" 마스킹 무시하는 영화관

2015-12-0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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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영화평론가 A 씨는 지난달 21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위키피디아

영화평론가 A 씨는 지난달 21일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홍대에서 영화 ‘헝거게임: 더 파이널’을 봤다. 상영 내내 도무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는데, 화면 아래 위로 회색 줄이 그어져 있어서다. 이런 현상은 영화관이 ‘마스킹’을 안했을 때 생긴다.

마스킹은 영화의 본래 화면 구도를 지켜주는 장치다.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가 다양한 크기가 있듯이 영화도 가로 세로 다양한 비율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1.85:1(플랫) 비율과 2.35:1(와이드 스크린) 비율이 자주 사용된다.

이날 상영된 ‘헝거게임: 더 파이널’은 화면이 더 넓적한 2.35:1 비율을 사용하는 영화다. 1.85:1 비율을 기본으로 사용하는 대부분 멀티플렉스 영화관에는 2.35:1 영화는 위·아래로 화면 크기를 줄여서 상영한다. 위 아래 남는 공간을 ‘레터박스’라고 부른다. 마스킹은 관객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 레터박스를 검은색 천이나 커튼으로 가리는 것을 지칭한다.

이미지를 오른쪽으로 슬라이드 하시면 마스킹을 한 화면으로 바뀝니다 / 영화 '이터널 선샤인', 영화 '헝거게임: 더 파이널' 스틸컷

A씨가 “영사기 때문에 생기는 레터박스는 회색빛에 더 가깝다”며 “레터박스를 검은색 천으로 가리지 않으면 화면 위·아래에 회색 줄이 쳐진 것처럼 보여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화면 비율은 감독 의도가 들어간 선택이다. 관객은 이를 온전히 감상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A씨 말처럼 영화에서 화면 비율은 우연히 결정되는 게 아니다. ‘반지의 제왕’,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압도적인 풍광을 보여주는 영화들은 화면이 더 긴 2.35:1 화면을 채택한다. 반면, 1.85:1 비율은 인물의 클로즈업이 자주 나오는 영화에서 사용된다.

작가이자 영화 평론가인 듀나(Djuna)는 2013년 엔터미디어에서 쓴 ‘CGV는 무엇이 그리도 귀찮았을까’라는 글에서 마스킹을 하지 않는 영화관들을 비판했다. (☞ 바로가기) 한 CGV 영화관에서 ‘링컨’을 본 듀나는 “어두운 색조와 와이드 스크린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며 “마스킹을 하지 않은 CGV 화면에서는 이 의도가 처참하게 무너진다”고 밝혔다.

CGV (자료사진) / 위키트리

듀나는 마스킹에 가장 예민한 영화 평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올해 출간된 에세이집 ‘가능한 꿈의 공간들’에서 한국 영화관의 마스킹 문제에 대해 여러 페이지를 할애해 비판했다. 이 책에서 듀나는 미국 독립극장 체인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The Alamo Drafthouse) 대표인 팀 리그(Tem League)에게 한국 상영관이 마스킹을 안 하는 경향에 관해 물었다고 밝혔다. 팀 리그 대표는 이 같이 답했다고 한다.

제 생각에 그건 게으르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기본적인 마스킹의 설치와 활용은 영화관 운영의 기초입니다. 1.66:1이나 1.33:1 비율의 고전영화를 틀 때 제대로 된 마스킹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5:1과 2.35:1 비율의 영화는 반드시 정확하게 마스킹을 해야 합니다”

듀나는 지난해부터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의 제보를 모아 국내 영화관 마스킹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바로가기) 해당 리스트에 따르면 마스킹은 오직 CGV만의 문제는 아니다. 롯데 시네마와 메가박스도 마스킹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제보가 많았다.

서울 한 롯데시네마에서 영사보조기사로 일하는 한지혜(가명·25) 씨는 자신이 일하는 영화관의 7개 상영관 중 1개 관에서 마스킹 기계가 고장난 적이 있다고 했다. 한 씨는 “약 10개월 동안 롯데시네마에서 일했는데, 고장 난 마스킹 기계를 한 번도 고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장 난 마스킹 기계를 본사에서 못 고치게 한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롯데시네마 (자료사진) / 위키피디아

한 씨는 “최근 신설된 롯데시네마는 아예 마스킹을 안 하는 추세”라며 “신설영화관에서는 ‘실링’(Ceiling)이라고 천장에 영사기를 달아놓고, 아예 영사실을 폐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설 영화관의 경우 마스킹이나 영사의 수준 자체를 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롯데시네마에 마스킹에 대한 질문지를 지난달 26일에 보냈으나, 1일 기준 “아직 관련부서에 답변을 확인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마스킹 문제가 영화상영을 전문적인 영사기사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에 맡기는 구조에서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에 있는 다른 롯데시네마에서 일하는 영사보조기사 전우빈(가명·20) 씨는 “8관에 이르는 영화관을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책임지는 구조가 문제다”라고 전했다.

그는 “마스킹 기계를 고치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흔하게 일어나는 영사 사고는 상영되는 영화와 다른 화면비로 스크린이 마스킹 되는 실수다”라고 말했다. 전 씨는 “영사 보조의 경우 배워야 하는 것도 많다. 마스킹만이 아니라 영사환경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는데, 영사품질은 전문가가 아닌 순전히 아르바이트생 손에 달렸다”고 밝혔다.

전 씨는 “더 큰 문제는 영사보조기사 같은 아르바이트는 근무 만기를 10개월로 정해, 숙련된 영사보조기사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근무 만기가 10개월인 이유를 물으니 전 씨는 “1년 이상 근무하면 롯데시네마 측에서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마스킹을 제대로 안 한다는 주장에 CGV 홍보팀 관계자는 “듀나가 마스킹 문제를 갖고 유독 CGV만을 비판하고 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CGV 영사팀 관계자는 “마스킹이 안 된 게 있다면 영화관의 마스킹 장치가 고장 났거나, 영화가 2.35:1이라서 광고 때 열어 놓은 걸 상영 때 닫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또 이 관계자는 “1.85:1 스크린에서 2.35:1 영화 상영 시 위·아래로 마스킹을 하는데, (마스킹 때문에) 상영 품질 및 화면 퀄리티가 떨어질 수 있다”며 “영화관 각 지점이 (마스킹 여부를) 선택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CGV에서 마스킹 기계가 고장 날까 봐 마스킹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CGV 영사팀 관계자는 “당사에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마스킹의 수리비는 100만 원 내외고 신규 설치도 300만 원 정도다. 전체 수선비나 투자비보다 매우 적은 금액이라 비용 때문에 안 한다는 건 오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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