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냐건 쓰지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인터뷰
2015-11-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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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트리(남궁인 씨 제공)활자 글을 좀처럼 읽기 힘든 시대에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독자를 늘
위키트리(남궁인 씨 제공)
활자 글을 좀처럼 읽기 힘든 시대에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독자를 늘려가는 이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이 삶과 죽음을 오가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32)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실(fact)에 허구(fiction)'를 더한 '팩션(faction)' 형식으로 2년째 쓰고 있다.
그의 글은 평정심과 냉철함이 최고 덕목인 의사가 썼다고 보기에는 지극히 감상적이고 문학적이다. 사람을 살리는 최전방에 서 있지만 '죽음에 관하여' 쓴다는 점에서 반전도 있다.
글보다는 이미지가 소비되는 페이스북에서 비교적 긴 호흡으로 써내려간 그의 글은 조회 수 2만 건, '좋아요' 1000개 이상을 받을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페북스타'이자 '글 쓰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씨를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만났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남궁인이다. 고려대학교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지난해 4월부터 충청남도 소방본부에서 소방대원들에게 의료 지도를 하는 공중보건의로 일하고 있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다소 낯설다. 무슨 일을 하는 건가?
응급의학과는 쉽게 말해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다. 심정지 환자와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게 주다.
응급실에는 환자들이 다양한 불편함을 느껴서 찾아온다. 귀, 코, 눈, 입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이물학도 있고 살에 낚싯바늘이 들어가거나 손가락 반지가 안 빠지는 경우에도 찾아온다. 주로 환자들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을 해결해주는 식으로 일한다.
- 특별히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의사로서 감수성을 아주 심하게 자극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죽고 살고 내가 사망선고를 하는 역할. 그런 극적인 순간이 벌어지는 상황을 겪고 싶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4년 동안 근무하면서 그런 경우가 차고 넘치게 많았다. 처음 생각한 것에 비해 10배 정도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 뉴스 속 사건을 실제 겪었던 응급의학과 의사 시각으로 쓴 글이 인상적이었다.
'동거남의 폭력으로 한 여성이 죽었다'는 간단한 기사였는데 사실 실제 응급실에서 접했을 당시 사연은 복잡했다. '시체에 인공호흡을 하는 남성', '체포되는 과정' 등이 모두 슬펐다.
뉴스 기사는 사실만을 전달한다. 굳이 알려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 사실 속에 인간적인 이야기들을 전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 글로 쓰게 됐다.
- 글은 언제부터 쓰게 된 건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뭔가를 쓰려고 했다. 대학을 갈 때 글 쓰는 전공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결국 의대에 갔다. 의대를 다니면서도 문학회 활동을 하고 그런 식이었다.
- 페이스북에서 활발하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2013년 5월쯤 레지던트로 일할 때 페이스북에 '흉부외과 의사 부족으로 환자들이 고통받는다'라는 논지의 글을 썼는데 화제가 됐다. 당시 언론에도 나오고 각종 의료단체나 전국 흉부외과 학예지, 백서 등에도 올라갔다.
처음으로 '아...내가 의료계 현실이나 상황을 지금까지 연습한 글쓰는 능력과 합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그 이후로 이런 저런 글을 조합해서 써냈는데 반응이 좋아서 2년 가까이 계속 써 나가게 됐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 의사라는 특수성도 작용하는 거 같나?
'아들로서 나', '문학으로서 나', '음악 하는 나'가 있는데 의사인 내 자아가 쓴 글을 사람들이 훨씬 더 좋아한다. 누구나 아들이고 글을 쓰는 사람도 많지만, 의사 시각으로 기술한 글이 사람들에게는 흥미롭게 받아들여지는 거 같다.
- 의사로서 환자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의사로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환자의 특징이나 일시는 일절 쓰지 않는다. 일부러 사실관계를 바꿔서 그 사람으로 특정할 수 없게 쓴다. 그런 일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고 기술하고 알릴 필요가 있는 일을 환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장치를 만들어서 쓰는 편이다.
- 응급실에서 일해서 그런지 글도 극적이고 긴박하다. 본인이 개척한 새로운 장르 같기도 하다.
부끄럽다. 내가 등단한 작가도 아니고... 다만 글을 쓸 때 포인트, 기승전결, 여운이 남는 부분 등을 모두 구상하고 쓴다. 긴박함을 추구하는 것도 나름대로 노력해서 써낸 결과다.
- 보통 글을 쓸 때는 페이스북 독자를 염두해 두고 쓰는 편인가?
첫 번째 독자는 나니깐. 내가 내 글을 정말 많이 읽는다. 쓰면서도 읽고 다 쓰고 나서도 읽고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도 본다.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슬픈 부분이 있으면 다시 읽어도 슬픈 느낌이 있다. 내가 그런 느낌을 받으면 사람들도 그런 반응을 보인다. 근데 웃긴 글은 종잡을 수가 없다.
- 웃겨서 화제가 된 글이 있었나?
지난 5월에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을 쓴 글이 있다.
공중보건의가 될 전문의만 모아놓은 중대가 있다. 나이도 많은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 훈련을 받다가 아프면 서로를 치료한다는 내용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게 뭐 웃기겠어'라고 썼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전국의 모든 게시판과 유머 사이트, 단체 카톡방에 돌았다. 그 때 '글 쓴 사람이 누구냐'라며 신상도 알아가고 그런 식이었다.
- 인상적인 댓글은 있었나?
유머 게시판이나 커뮤니티에 댓글 보려고 돌아다녔다. 가장 인상적인 댓글은 "이 작가 실물도 잘생김..."이라는 글이었다.(웃음) "누구 작가 같다"라고 쓴 것도 있었는데 언급된 작가만 50명이 넘어 사실 조금 부담스러웠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중보건의 훈련소' 글에 달린 댓글
- 글이 퍼지는 건 어떤가?
일단은 좋다. SNS에 글을 쓰는 건 많은 사람이 봐주었으면 하는 거다. 글을 혼자 쓰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나 시인이 아니고 일개 아주 평범한 의사인데. 더구나 남이 쓴 글을 읽기 힘든 시대인데 많은 사람이 글을 읽어준다는 자체가 좋고 감사하다.
- 의사로서 글을 쓰는 데에 대한 부담은 없나. 특히 '메르스 사태' 같이 의료계 현안이 닥쳤을 때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의사로서 입장이나 견해 등을 직설적으로 듣고 싶어 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그런 의견을 피력해야만 하는 압박감이 있다.
한쪽으로 치우쳐지거나 비난하는 쪽은 사실 부담이 된다. 그런 것보다는 의사의 경험이나 감정적인 부분으로 풀어가려고 한다.
메르스를 예로 들자면 '메르스 사태가 잘못됐다', '정책이 나빴다'가 아니라 '메르스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는 것이 안타깝다'와 같이 조금 더 객관적이고 의료진이 감정적으로 겪는 고충을 풀어내려고 한다.
의사라면 일에 파묻혀 살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쓰는 틈틈이 아마추어 밴드 메인 신디사이저도 맡고 있다고 했다. 5년 간 매주 합주를 하고 공연 요청을 받으면 공연도 한단다. 영어, 일어, 중국어 공부에 일요 축구 풋살팀까지... 일도 취미도 완벽한 그를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 거 같았다.
- 주변 반응은 어떤가. 부러워하지는 않나?
마음 먹고 글을 쓴다는 거에 대해서는 신기해한다. 근데 주변에서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거 같다. 그냥 '너는 그런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거 같다.
- 의사로서 삶은 어떤가.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닌지.
의사로서 활동하는 것도 좋다. 사람들이 당장 눈앞에 있는 불편함을 풀어주는 게 잘 맞다. 사람들이 모르는 걸 가르쳐 줄수도 있다. 설명을 해나가면서 사람들이 겪는 감정들... 기쁨이라든지 슬픔을 사람들이랑 호흡하는 것도 좋다. 너무 힘들면 그런 생각이 안 들지만 의사로서 일도 마음에 든다.
- 앞으로 계획은?
아직 32살이고 본격적으로 글을 쓸 날이 기니깐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놓거나 쓰지 않는 날은 없을 거 같다. 앞으로 무슨 글을 쓸 지에 대해서는 딱히 정한 건 없다. 장르 문학일수도 있고 의료계에 걸친 문학을 쓸 수도 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생애 첫 번째 책 출판 계약을 맺으러 나간다고 했다. 그날 저녁 어김없이 그의 페이스북에는 출판을 앞둔 감회가 담긴 글이 올라왔다. '그와 닮은 한 권의 책'은 내년 봄 만날 볼 수 있다.
*글·사진 =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