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니 콩쿠르’ 한국인 최초 우승, 문지영 피아니스트 인터뷰

2015-09-2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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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문지영 씨 제공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밀회’에서 선재(유아인 씨)는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 제공

지난해 방영된 JTBC 드라마 ‘밀회’에서 선재(유아인 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드라마에서 선재가 나가기로 했던 대회가 부조니 콩쿠르였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지 1년이 지나, 힘든 환경을 딛고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가 있다.

지난 5일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펼쳐진 부조니 피아노 콩쿠르 최종결선에서 문지영(20·한국예술종합학교) 씨가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해 우승했다.

Busoni Piano Competition 페이스북

문 씨가 부조니 콩쿠르 파이널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하는 영상이다.

유튜브, Ferruccio Busoni Piano Competition

올해 60회를 맞은 이 대회에서 서혜경·이윤수 씨가 입상한 적은 있지만, 한국인이 우승한 것은 처음이다. 부조니 콩쿠르는 연주 수준이 미달이면 1등을 뽑지 않아 59회 대회 중 단 27명만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어려운 대회로 알려져 있다.

문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어왔다. 일부 매체는 그가 피아니스트이면서도 자신의 피아노가 한 대도 없는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그는 이 별명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25일, 한국에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문 씨를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만났다. 문 씨가 다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는 이곳 근처에 있다.

이하 위키트리

문 씨는 처음에는 수줍어 했지만 피아노와 피아노 연습 이야기를 하자 차분하게 말을 풀어나갔다. 또 인터뷰에서 가난해서 음악을 포기하는 학생들에게 섣불리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 드라마 ‘밀회’에서 선재 역을 맡은 유아인 씨가 도전했던 것이 문지영 피아니스트가 우승을 차지한 부조니 콩쿠르였습니다. 혹시 드라마 보셨나요.

JTBC '밀회'

지금 하는 건가요? 아예 안 봐서. (웃음)

- 올해 60회를 맞는 부조니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부조니 콩쿠르에 우승하고 나서 바뀐 점이 있나요?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 제공

항상 인터뷰하면 먼저 소감을 물어봐요. 오랫동안 못 믿었어요. 그래도 3주 가까이 지난 건데도 실감을 못 하고 있는 거죠. 저로서는 막 좋아 날뛰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했던 것 같아요.

- 7살부터 피아노를 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피아노를 시작한 건) 6살 끝나갈 무렵이었어요. (부모님께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데요. 막연하게. 되게 평범해요. 유치원 같은 데서 피아노 치시잖아요. 그런 거 보면 배우고 싶다고 그랬나 봐요.

한번 18~19살 사이에 (피아노를) 잠깐 쉰 적을 빼고는, 쉰 적 없어요. 가끔 안 하는 날이 있긴 해도, 진짜 꾸준히 해왔어요.

- 어떤 계기로 본인 재능을 발견했나요?

이하 위키트리

재능이라기보다 (제 경우는) 어떤 슬럼프를 겪은 것은 아니거든요. 그거 자체가 타고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슬럼프는 아직 없었어요. 남들은 악기 하다 보면 뭘 하든지, 슬럼프를 심하게 겪으면 거기서 안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진짜 예술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도 그만둔 사람도 있고, 대학 졸업하고 나서도 그만두는 사람이 있고요. 근데 저는 그런 슬럼프를 안 겪었죠.

그러니까 딱히 언제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정했던 것은 없었어요. 그냥 피아노를 시작할 때부터 공부보다 피아노가 중요했어요. 정말 자연스럽게 온 거라서, ‘뭘 전공해야겠다’ 그런 것도 없었고요. 그만큼 (피아노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슬럼프도 안 겪고 그냥 여기까지 계속 온 게 아닌가 싶어요.

- 처음 피아노를 처음 친 이후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그게 없었어요. (웃음)

- 음악에 선천적인 재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 진짜 많이 필요했어요. 유명한 음악가 중에서는 연습 안 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요. ‘하루 2시간 이상 왜 하는지 모르겠다’ ‘4시간 이상 연습을 하면 바보다’이런 말씀을 남기신 세계 최고 피아니스트가 많은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의 스승이신 김대진 선생님도 학교 다닌 시절에 연습을 많이 하셨어요. 저도 (연습이) 정말 많이 필요해요.

저는 중고등학교를 안 다녀서 그때는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문 씨는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거쳤다). 평균 8시간이었죠. 학교에 다니면서 그렇게까지는 못해요. 수업도 있고, 뭐 다른 게 많아서요. 요즘에는 평균 4~6시간 연습해요. 주말 이럴 때는 더 많이 연습해요.

- 연습하는 과정을 즐기시는 것 같아요.

제가 연습을 싫어하지 않아서 행운인 거 같아요. 사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악기를 연습할 때는 악기마다 요구하는 연습시간이 달라요. 제가 생각하기에 피아노는 (연습이) 정말 많이 필요해요. 피아노 치는 사람들이 몸이 안 좋아요. 피아니스트들이 허리·목 디스크가 많아요. 피아노 치는 게 약간 노동이에요.

피아노 연습이 그렇게 싫지 않다고 느끼는 게 재능 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 피아니스트가 연습하는 과정이 왠지 운동선수와 비슷한 것 같네요.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 제공

음악도, 운동도 결과적으로 보이는 건 단편이잖아요, 그것까지 가기 위해서는 몇백 배 그 시간을 연습해야 하는 거로 생각해요. 시간 예술이니까요. (결과가 보이는 것은) 정말 그 순간이잖아요.

물론 연습하기 싫을 때는 연습하지 않아요. 하기 싫을 때, 억지로 하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습을 하루씩이나 쉬진 않죠.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그냥 나와요.

- 많은 언론에서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라는, 어려운 역경을 견딘 피아니스트로 소개됐습니다. 그런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하 위키트리

그런 기사가 나갔을 때, 저보다 어린 사람들이 힘이 얻는다고 들었어요. 사실 그게, 100% 사실은 아니잖아요. 너무 많이 과장되고 비틀려졌어요.

저는 피아노가 있었는데, 없다고 (언론에서) 단정을 지었어요. 저는 9살 때 생일선물로 업라이트를 피아노(현을 세로로 친 직립형 피아노)를 받았어요. 보통 전공생들은 그랜드 피아노가 많이 있긴 해요.

하지만 그랜드 피아노가 없는 사람도 대단히 많거든요. 그게 피아노가 없다는 게 아닌데, 일부 기자님들은 엄청 드라마틱한 것을 추구하셨는지, 뭐 그렇게 말이 나갔더라고요. 정말 당황스러웠죠. 저처럼 그랜드 피아노 없이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주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런 후 이제 18살쯤 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셨어요. 그때부터 그랜드피아노가 생겼죠. 전에도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습 잘했거든요? 물론 업라이트 피아노와 그랜드 피아노가 다르지만 저는 충분히 연습할 수 있어요.

- 그럼 가난했다는 기사는 좀 과장된 건가요?

사실 힘들긴 힘들었죠. 음악하는 게 워낙 다른 것보다 돈이 많이 들고, 제가 살았던 여수가 어떻게 보면 시골이잖아요. 서울로 가기 시작하면서 돈이 정말 많이 들었죠.

어렵긴 어려웠어요. IMF 금융위기 때 아버지 부도가 나셨거든요. 어려워지면서 이사도 갔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 장학금 신청을 많이 했어요.

- 어려운 환경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하시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

네. 제가 (경제적 어려움이) 많이 과장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저는 그때 어리니까 그런 거에 신경을 쓰지 않잖아요.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사람과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려워서 섣불리 포기하면 그것만큼 안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포기를 안 하면 어떻게든 입구가 열리게 돼요. 요즘은 예전보다 후원체계도 잘 돼 있으니까요. 그리고 옛날의 작곡가는 전부 다 형편이 어려웠다고 해요. 그래서 작곡가는 혼자 있는 게 아니라 항상 후원자가 있었죠. 그러니까, 형편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엄마 어린 시절에는 정말 부잣집 사람들만 서양악기를 했데요, 그래서 유학을 갔고. 그런 편견이 아직도 남아 있잖아요? 물론 ‘악기빨’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악기에 따라 소리가 달라요. 피아노는 그게 없는 게 정말 좋아요. 동생이 잠깐 바이올린을 했는데, 연습용 바이올린이 18만 원이에요. 근데 억대의 바이올린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그건 감히 비교할 수 없어요.

물론 실력도 실력이죠. 실력이 좋은 사람들은 나중에 좋은 악기를 후원을 받더라고요. 살 수 없는 악기들도 있거든요. (옛날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악기들이 있거든요. 그거는 돈 주고도 살 수 없어요. 피아노는 그에 비하면 소리가 공평한 악기에요.

그러므로 음악에서 저소득층이 더 어렵지 않나 싶어요. 피아노는 그렇다 쳐도, 다른 악기들은 악기가 되지 않으면 어디에 내밀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동생도 그만둔 거고요.

- 스승인 김대진 교수 가르침 중에서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김대진 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홈페이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김대진(53) 교수는 손열음·김선욱·문지영 씨 스승으로써 순수 국내파 연주자를 유명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으로 이끌었다

“벌써 5년째 배우는데 되게 끝이 없다고 느껴요. 선생님한테는 피아노뿐만이 아니라 많은 면을 보면서 배워가요. 선생님께 마음가짐과 인성같이 인생 자체를 배우는 거 같아요. 한국 음악계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계시는데 엄청 겸손하세요.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시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그런 말씀을 가끔 해주세요. 음악 외에는 외적인 다른 생각은 하지 말라고요. 연주할 때 음악만 생각해야지 ‘콩쿠르에서 1등하고 싶다’라 던지, 이걸 쳐서 뭘 어떻게 하려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세요. 음악만 순수하게 집중하고 바라보라고 하시죠.

- 피아노 이외의 여가에는 뭐하시면서 쉬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연습을 쉬지 않아요. 저는 사실은 시간이 많았잖아요. 수능도 안 봤고, 학교도 안 다니고 해서 영화를 미친 듯이 많이 봤어요. 지금은 많이 못 보지만.

(어떤 영화를 좋아하셨냐는 질문에) 저는 공포영화 빼고 다 봤어요. 예전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했어요. 제일 먼저 본 게 ‘펄프픽션’이었어요. 그 영화로 흥미를 갖고 ‘저수지의 개들’도 보고 ‘킬빌’도 보고 다양하게 봤어요. 외국 영화 위주로 한참 별 영화를 다 봐서, ‘반지의 제왕’도 앉은 자리에서 온종일 10시간 동안 다 보고 그랬어요.

영화 '저수지의 개들' 스틸컷

- 클래식 이외에는 어떤 음악을 들으시나요?

한국 대중음악은 잘 안 들어요. 요즘은 잘 안 듣는데, 팝송은 들었어요. 예전에는 밴드를 많이 들었어요. 퀸, 라디오헤드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 개성을 좋아했나 봐요. 두 그룹을 좋아했어요.

특히 라디오헤드는 다 들어봤어요. 저는 제일 신기했던 게 (클래식과) 박자 개념이 다르거든요. 그걸 다 그 사람이 작곡했다는 거잖아요. 그게 신기했어요. 7박자를 쓴다든지 되게 신기했어요.

- 피아니스트가 겪는 압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전진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위키트리

아무래도 콩쿠르에 갔다 오면 (압력이) 생기죠. 콩쿠르를 왜 가느냐면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예요. 콩쿠르에서 어떤 경력이 생기면 연주에 초대를 해줘요. 거기 시선이 웃긴 게 ‘쟤가 어디서 우승했데,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연주회를 오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시선이 주는 부담감이 커지는 게 스트레스긴 하지만. 제가 좋아해서 하는 거니까 신경 안 쓰려고요.

매번 좋은 연주를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만족하기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10번 연주하면 1번 (스스로) 만족할까 말까예요. 콩쿠를 나가던, 제 연주를 하던 저의 최대 목표는 관객이나 등수가 아니라 제가 진짜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하는 게 목표에요.

콩쿠르에서 떨어지면 우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사실 저는 콩쿠르에서 떨어져도 슬프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하지만 연주를 망치고 오면 붙어도 기분이 안 좋아요.

- 앞으로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번 콩쿠르를 계기로 연주를 진짜 많이 얻었어요. 이번 달 말부터 시작해서 한 달에 서너 번은 연주를 꼭꼭 해요. 제 꿈을 가기 위한 길이 하나 열린 거잖아요. 제가 그래도 콩쿠르에서 어린 편이었거든요. 선생님께서 콩쿠르 전에 ‘너는 부담이 정말 없는 거라고, 음악 인생에서 1/50밖에 안 왔는데 앞으로 가야 될 길은 더 머니까 항상 겸손하게 주어지는 연주마다 최선을 다해라’고 말씀하셨어요.

본질적인 초심은 안 잃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너무 뼈저리게 생각하고 있어서, 진짜 외적인 것은 생각 안 하고 순수하게 음악만 생각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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