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서 '대학생-취준생' 통장 개설 힘든 이유
2015-05-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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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위키트리] "금융회사에서는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금융거래 목적확인서'
"금융회사에서는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금융거래 목적확인서' 및 객관적 증빙자료를 요청할수 있으며, 금융거래 목적 확인이 어렵거나 계좌 개설 목적이 불명확한 경우 계좌 개설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선 은행에서 새로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이 시행되며 고객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대포 통장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 예금 통장을 개설하기 위해 은행을 찾는 고객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위키트리에 들어온 제보 내용이다.
대학교 2학년 김 모 씨(여)는 최근 우리은행 대구 범어동지점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용돈을 받기 위해 입출금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은행 측에서 통장을 어디에 쓸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며 통장 개설을 거부한 것이다.
"용돈 용인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느냐"고 물었지만 은행 직원은 "금융감독원에서 내려온 지침이라 저희도 잘 모르겠다"며 '아르바이트용', '공과금용', '세금용' 같이 목적이 확실하지 않으면 통장을 만들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번에는 김 씨에게 용돈을 줄 아버지가 우리은행 대구 대명동지점 지점장을 만났다. 은행 측은 월급명세서같이 직업이나 수입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직 학생인 김 씨는 관련 서류를 마련할 수 없었다.
결국 갈등 끝에 '휴대폰 요금 용도'로 통장을 개설했다. 김 씨는 은행 직원이 보는 앞에서 SKT 고객센터에 휴대폰용 통장이 바뀌었다며 전화해 직접 계좌번호를 불러줘야 했다.
지난해 12월 전자금융거래법이 개정됐다. 아무 대가 없이 예금 통장을 양도하거나 대여할 경우 처벌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남에게 통장을 양도해준 사람은 3년 이하 징역 혹은 2000만 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대포통장'을 사용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명의 통장을 양도해 잠재적 대포통장을 유통한 사람도 처벌 대상이 된다.
금감원(@fss_news)이 내놓은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도 일선 은행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거주지·직장과 먼 지점에서 계좌 개설을 시도하는 경우, 계좌 개설 목적이 불명확한 경우 은행은 계좌 개설을 거절할 수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금융거래 목적확인서'를 요구했다.
문제는 은행마다 적용 기준이 달라 애꿎은 고객들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씨처럼 소득 증명이 어려운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이 통장 개설 차 은행을 방문했다가 난처한 상황에 부딪히고 있다.
은행에서 발길 돌린 취준생
26살 최 모 씨(26)는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이다. 지난달 29일 위키트리가 그와 함께 예금 통장 개설을 시도해봤다.
1. 우리은행 종로5가지점
먼저 찾은 곳은 최 씨가 다니는 학원 근처 우리은행(@wooribank)이다. 통장 개설에 필요한 신분증은 구비한 상태였다.
신규 예금통장을 개설하러 왔다고 말하자 은행원은 "거주지나 직장이 이 근처냐"고 물었다.
최 씨가 "아니다"라고 답하니 은행원은 "신규가 아니면 증빙 서류가 불필요할 수 있는데 3월 9일부터 신규 고객에게는 (서류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며 통장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최 씨는 상담 의자에 앉아보기도 전에 은행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2. 우리은행 고려대 스마트지점
결국 최 씨의 실 거주지인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지점을 찾았다.
최 씨가 "입출금 용 예금통장을 만들러 왔다"고 말하자 은행원은 금감원 지침을 언급하며 통장 개설이 어렵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은행 역시 신규 통장 개설 기준이 강화됐다"며 공과금 납부 등을 해야만 개설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원룸에 살아 따로 공과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건물주가 관리비에 포함해 공과금을 내는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하나"고 최 씨가 묻자 은행원은 휴대폰 결제를 통장과 연결하거나 적금을 드는 방법을 권했다.
"학생들은 신규 발급을 못 받는 거냐"고 묻자 은행원은 재차 휴대폰 결제를 통장과 연결할 것과 적금을 권했다. "이 방법밖에는 따로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굳이 핸드폰 결제를 신규 발급할 통장으로 돌리거나 적금을 들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최 씨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3. 신한은행 종로중앙금융센터
이런 사례는 다른 은행에서도 있었다. 신한은행(@Shinhanbank)을 찾아갔다.
신규 예금통장 발급을 원한다고 하니 은행원이 "무슨 일에 사용하시려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최 씨는 "그냥 입출금 용이다. 용돈 받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은행원은 난색을 표했다. 그리고 '대포통장 근절을 위한 계좌개설 절차 강화' 안내문을 최 씨에게 건넸다.
안내문을 읽은 최 씨가 "용돈에 어떻게 증빙 서류가 있을 수 있느냐"고 묻자 은행원은 한동안 난처해하다 통장 개설을 진행했다. "후에 증빙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 씨는 '금융거래 목적확인서'에 사인한 후 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4. NH농협 동대문지점
최 씨는 NH농협 동대문지점도 방문했다. 하지만 거주지 근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통장 개설을 거부당했다.
은행권은 지난 3월부터 대포통장 근절대책을 일제히 도입했지만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아르바이트 급여 통장을 만들기 위해 은행을 찾은 한 고객은 고용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은행과 "원래는 다 해줬는데 왜 안된다고 하느냐, 그냥 해달라고 따지라"는 고용주 사이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금융소비자연맹(@finconfe) 강형구 국장은 위키트리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의 금융 사기 발생률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통장 발급 기준을 강화한 부분은 이해한다"면서도 "문제는 은행이 고객에게 제대로 된 설명과 이해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은행에서 어려움을 겪은 대학생 김 씨 역시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던 점이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 밝혔다.
"무작정 안된다고 하니까..."
김 씨는 "무작정 안된다고 하니까 불편한 것도 있고, 이것 때문에 휴대폰 요금 계좌도 다른 계좌가 있었는데 옮겨야 했다"며 "은행도 위에서 내려온 거라 '어쩔 수 없다'며 똑같은 말만 반복하니까 화가 났다. 지점장까지 나왔는데 지점장도 딱히 자세한 설명을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 국장은 "'거주지나 직장이 근처가 아니라서 안된다', '대포통장이 문제라서 안된다' 식으로 일을 진행하니 생기는 문제"라며 "금융 사기로부터 고객의 피해를 막기 위함임을 설명해야 한다. 은행이 금감원 지침을 자율적으로 따르면 되는데 은행 쪽에서 피해를 입을까 봐 엄격하게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홍보팀 이정우 과장은 "고객들의 불편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지점별 은행원의 이해도 차이로 고객들에게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며 "내부적으로 회의를 계속 진행하는 중이고 상황별 대처 시스템도 지속적으로 각 지점에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포통장 피해가 극심해 계좌 개설 조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이해해 달라"며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이 도입된 초기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민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포통장 피해를 가만히 둘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장 개설 관련 불편 사항은 은행들이 서비스 개선 등 자체적으로 노력해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선의'에서 시작했지만 '선의의 피해자'만 늘어나고 있는 대포통장 근절대책. 금융 안전과 고객 편의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위키트리 경제산업팀 김나경, 이아리따, 조형애 기자가 공동 취재한 스토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