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는 왜 자동차에 꽂힐까?"
2014-08-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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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는 왜 자동차에 꽂힐까? 경향신문 이고은 기자 14개월 된

남자아이는 왜 자동차에 꽂힐까?
경향신문 이고은 기자
14개월 된 우리 아이는 요즘 자동차에 푹 빠졌다. 지나가는 자동차만 보면 “어! 어!”라고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아빠의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돌릴 때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양 웃음을 짓는다. 요즘은 거의 자동차 장난감만 갖고 노는데, 같은 자동차라도 진짜 자동차 모양에 가까운 것을 더 좋아한다. 예상대로, 우리 아이는 남자아이다.

듣기로는 남자 아이들은 자동차 아니면 공룡에 꽂힌다던데, 우리 아이의 경우는 자동차인가보다. 우리 아이가 남자아이임을 증명하는 예는 이 뿐만 아니다. 한번은 문화센터에서 공놀이 수업을 하는데, 여러 색깔의 공들 중에서 파란색 공만 골라잡은 적도 있다. 심지어 자기 앞으로 다른 색 공이 굴러오자, 옆의 친구가 갖고 있는 파란색 공을 갖겠다고 달려가기도 했다.
자동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일찍이 자동차 그림책을 열심히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많이 보여줬기 때문인지, 스스로 좋아해서 많이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파란색 공을 좋아하는 것은 옷이나 이불, 각종 물품들이 대부분 파란색 계열의 것이기 때문에 익숙해서가 아닐까 추측한다. 어쨌건 신기했다. 14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어떻게 벌써 전형적인 성역할 개념과 취향을 갖게 됐을까.
생물학적 성에서 비롯된 선천성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성과 관련한 지위와 역할을 학습하는 것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다. 이것을 ‘성역할 사회화(sex socialization)’라고 한다.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명제는 남성에게도 통용된다. 사회적 성이란 생물학적 성과 더불어 어떤 성적 환경 속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일차적인 성역할 사회화는 가족을 통해 이뤄진다. 부모가 자녀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나 자녀에게 만들어준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역할을 학습하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남자 아이가 장난꾸러기 같은 행동을 하면 ‘씩씩하다’고 칭찬하는 반면, 같은 행동을 해도 여자 아이가 말괄량이처럼 행동하면 걱정거리로 여긴다. 때문에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보다 독립적이고 도전적으로 자라는 경우가 많다.
장난감이나 책, 미디어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남자 아이들에게는 자동차나 무기, 운동기구와 같은 장난감을 쥐어주고 여자 아이에게는 인형과 소꿉놀이 등의 장난감을 갖고 놀게 한다. 이를 통해 남자 아이는 경쟁심, 도전 정신, 공격성 등을 학습하는 반면, 여자 아이는 외모, 보살핌, 관계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작은 자극들이 모여 아이의 성향과 기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인 낸시 초도로우(N.Chodorow)는 전통적인 남녀 간의 성역할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자녀양육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으로 양육에 참여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가 성역할에 대한 균형감각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자 아이는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성장하는데,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지 않고 관계 맺기에 둔감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경우 타인과의 감정 교류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의 집에 놀러갔더니, 예쁜 원피스를 입은 딸아이가 자동차를 조종하면서 놀고 있었다. 바지로 옷을 갈아입은 뒤엔 아빠와 함께 아파트 농구장에 가서 운동을 하며 놀기도 했다. 친구는 “아이가 성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도록 일부러 자동차나 운동 기구 등의 장난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나는 파란색 공을 잡은 아이에게 “우리 아들 상남자네.”라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농담을 했지만, 아이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자라게 될까봐 살짝 걱정도 됐다.
앞으론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거나 아이의 행동에 대해 칭찬할 때엔 이 점에 더욱 민감해져야겠다. 동물 인형이나 주방놀이 장난감도 위시리스트에 올려둘 참이다. 참, 그리고 이번 기회를 ‘빌미’로 남편에게는 더욱 많은 가사와 육아 참여를 독려해 봐야겠다. 하.하.하.
o 글쓴이: 이고은. 경향신문 기자. 2005년 입사해 정치부, 사회부, 인터랙티브팀 등을 거쳤다.
2013년 6월 첫 아이를 출산해 현재는 육아휴직 중에 있다.
* 본 글은 저자의 동의를 얻어 양평원 블로그에 게재하였습니다.
* 본 글은 양평원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