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저격한 15가지 이유
2014-03-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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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삽화 / 사진=구글 퍼블릭 이미지]안중근 의사가 190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삽화 / 사진=구글 퍼블릭 이미지]
안중근 의사가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이용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안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을사늑약의 후속 조치로 생긴 조선 초대 통감이었다. 을사늑약은 독립국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된 불법 조약으로 사실상 조선을 '껍데기'로 만든 사건이었다.
아래 내용은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1차 검찰심문 당시 열거한 '이토의 죄 15개조'에서 드러난다.
1.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한국의 황제를 폐위시킨 죄
3. 5조약(을사늑약)과 7조약(정미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철도·광산·산림·천택(川澤)을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은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 싶어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일본왕을 속인 죄
14.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왕의 아버지 태왕을 살해한 죄
안 의사의 지적 중 1조와 15조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이토가 조선 통감으로 있던 시기에 이뤄진 일이다. 따라서 안 의사의 저격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준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안 의사는 이토를 동양 평화를 교란시킨 인물로 지목했다. 심문 당시 일본 검찰관은 이토가 동양평화를 주창했던 인물이라고 주장하자 안 의사는 "일본왕과 이토가 주장한 동양 평화는 대한제국과 다른 나라를 속이기 위한 헛된 구호일 뿐"이라고 답했다.
실제 일본은 1910년 조선을 강제합병한 후 팽창주의를 지속했다. 결국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미국에 항복할 때까지 35년간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을 일으켜 아시아를 혼란에 빠트렸다.
한편 안 의사는 이토를 사살한 죄로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3월 26일 순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