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렁주렁의 민족” DNA에 새겨진 한국인 키링 사랑, 조상 대물림이었다

2025-04-2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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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꾸밈 문화…어쩌면 조선시대 선비한테서 물려받은 걸지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한국에서 최근 가장 유행 중인 '키링 문화'의 유래가 어쩌면 먼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에서 비롯된 허무맹랑한 주장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 조상들의 꾸밈에 대한 열정은 우리가 상상한 것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갓과 한국 한복을 입은 시민 / KernelNguyen-shutterstock.com
갓과 한국 한복을 입은 시민 / KernelNguyen-shutterstock.com

국내에서 가방이나 지갑, 휴대폰에 인형이나 키링을 달고 다니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그것도 하나만 다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함께 달아 화려함을 과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실제 생활에서 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그런 식으로 꾸미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꾸미는 행위 자체가 재밌다고 하는가 하면 취향이 담긴 인형, 키링을 통해 물건에 자신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며 다양한 의견을 이유로 제시한다. 즉 단순한 기분 전환을 넘어 취미, 자기 정체성 표현 등 여러 복잡한 맥락이 꾸밈을 매개체로 탄생한 유행인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사람들의 꾸밈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다. 이는 현재 남아 있는 역사적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튜브, 꾼만두

키링 문화의 유래가 조선시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은 지난달 14일 유튜브 '꾼만두'에 올라온 한 영상에서 제기됐다. 유튜버는 'DNA에 새겨진 한국인만의 종특'이란 제목의 영상에서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 드라마에 출연하는 남성 배우들의 복식을 주목하며 옷에 비해 유독 화려한 갓끈과 귀가 아플 정도로 크고 무거워 보이는 귀걸이를 언급했다.

그는 "이 정신이 이어져 내려와 현대 한국인들도 아이폰 케이스, 마스크끈, 가방 등에 키링이나 인형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고 있다. 한국인은 앞으로 주렁주렁의 민족이라고 소개해야겠다"라고 말했다.

Yeongsik Im-shutterstock.com
Yeongsik Im-shutterstock.com

실제 조선 후기 남성들은 꾸밈에 남다른 철학이 있었다. 이들은 '의관정제'(옷과 관모를 격식에 맞게 차려입고 매무새를 바르게 하는 것)에서 제대로 된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영조는 "의관을 바로 하여 남이 보는 것을 존중하고 엄연히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 같이 두려워하라"라고 말했다. 당시 외적인 모습은 신분의 고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특히 조선 후기 남성들이 온 신경을 기울인 건 머리였다.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날마다 머리를 빗는다"라고 말한 기록도 있다. 당시 남성들은 머리를 빗은 뒤 상투를 고정하고 망건을 착용했다. 망건은 흐트러진 머리가 날리지 않도록 단단히 감싸 묶는 머리띠였다. 멋쟁이의 기준은 망건을 얼마나 단단히 매느냐였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욕심이 과한 일부 남성은 망건을 풀었다가 피를 흘리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머리에 망건과 갓을 고정하기 위한 망건의 부속물인 관자와 풍잠까지 얹어야 했다. 또한 안경과 구슬갓끈, 부채와 장식용 선추, 쌈지와 주머니, 도포 위로 두르는 가는 띠 등 수많은 액세서리를 조합하면 그제야 조선의 지체 높은 선비가 완성됐다.

Yeongsik Im-shutterstock.com
Yeongsik Im-shutterstock.com

특히 갓끈은 복잡한 역사를 가졌다. 원래 갓끈은 갓을 머리에 고정하는 실용적 기능이 중심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신분과 개성을 드러내는 장식적 의미가 강해졌다. 초기에는 주로 옷감(포백, 布帛)으로 만든 단순한 갓끈이 사용됐으나 점차 옥, 마노, 호박, 산호, 대모, 밀화, 수정, 금, 은, 대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장식용 갓끈이 등장했다. 여름에는 땀에 젖어 옷감 갓끈이 쉽게 떨어지는 문제 때문에 실용을 위해 무게감 있는 구슬갓끈(주영, 珠纓)을 많이 썼다.

갓끈의 재료와 형태는 신분, 계절, 갓의 종류에 따라 달라졌으며 점차 사치와 유행의 상징이 됐다. 종류를 살펴보면 '포백영'은 가장 기본적인 옷감 갓끈으로, 갓을 턱 밑에 고정하는 실용적 기능이 중심이었다. '주영'은 다양한 보석(구슬)으로 만든 갓끈으로, 사치와 신분 과시의 상징이었다. 주로 가슴 밑까지 늘어뜨려 장식성을 강조했다. 사대부와 양반 사이에서는 갓끈이 사치와 유행의 상징이 되며 다양한 보석과 장식을 달아 뽐냈다. 이로 인해 중국 사신이 조선을 조롱하는 기록도 아직 남아 있다. '연자영'은 연밥 등 흔한 재료로 만든 무게감 있는 갓끈으로, 여름철 실용성을 강조한 갓끈이었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형태가 특징이다.

'대영'은 흥성대원군 집정기 간소화 정책에 따라 대나무로 만든 갓끈이다. 금이나 은, 옥, 영 등 귀한 재료로 만든 갓끈은 왕실과 고위 관료만 사용할 수 있었고 신분 구분의 역할도 했다. '납조밀화 영'은 밀랍으로 만든 갓끈으로, 전립(무관용 갓) 등에 사용됐다. 세종 때부터는 법적으로 신분별 사용이 엄하게 제한되기도 했으나 후기에는 신분제가 문란해지면서 규제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한 매장 매대에 걸려 있는 인형 키링들 / Opasbbb-shutterstock.com
한 매장 매대에 걸려 있는 인형 키링들 / Opasbbb-shutterstock.com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 남성들의 갓끈 영상과 현대의 각종 꾸미기 문화를 연관 지은 영상은 '좋아요' 수 5만 개, 댓글 수 1000개를 넘게 받으며 많은 화제가 됐다. 네티즌들은 "무거운 게 싫어서 그 어떤 것도 안 달았는데 노비였나...", "그러네. 어쩐지 가방에 뭔가를 계속 달고 싶더라", "어디서 봤는데 해리포터가 한국 배경이었으면 마법 지팡이에 키링 주렁주렁 달고 있을 거라고 (하더라)", "사람들 가방에 인형 달고 다니는 거 귀여움. 좁아터지고 (사람들) 기본이 다 화나 있는 서울에서 남의 가방에 인형이라도 쳐다보면서 잠깐 힐링한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 후손 맞네. 오만 거 자꾸 주렁주렁 달고 싶더라" 등 반응을 보였다.

유튜브, 국사편찬위원회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home 한소원 기자 qllk338r@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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