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어쩔 수 없이 단속 안 하고 묵인하는 유일한 ‘남한 가요’
2025-04-23 10:14
add remove print link
탈북민들이 나중에 남한 노래라는 걸 알고 깜짝 놀라는 노래

북한 청년들이 입대할 때 부르는 한국 노래가 있다. ‘이등병의 편지’. 놀랍게도 이 노래를 북한 주민 상당수는 자기들 노래로 오해한다. 철저한 검열의 나라 북한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유행하게 된 이유를 살펴본다.
‘이등병의 편지’는 1986년 김현성이 작사·작곡해 처음 발표한 곡이다. 김현성은 스물한 살에 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서울역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영감을 받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 같은 해 7인 옴니버스 음반 ‘땀 흘리며 부른 노래’에 수록해 첫선을 보였다. 가사는 군입대를 앞둔 젊은이의 애환을 담아낸다. 열차를 타고 훈련소로 떠나는 장면, 부모님께 큰절하는 순간, 친구들과의 이별을 생생히 그린다. ‘이등병의 편지’는 징병제라는 한국의 현실과 맞물려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 노래는 1990년 한겨레 주최 ‘겨레의 노래’ 공모에 당선되며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김민기가 프로듀싱한 음반 ‘겨레의 노래’에 전인권의 목소리로 리메이크돼 발매됐고, 전국 순회 공연이 이어졌다. 전인권이 개인 사정으로 공연에서 하차하자 김광석이 대신 무대에 올랐다. 김광석은 ‘이등병의 편지’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큰형이 군 복무 중 사망해 자신이 6개월 방위 복무 후 이등병으로 제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개인적 사연은 그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를 때 깊은 감정을 실어내는 계기가 됐다. 1993년 김광석의 리메이크 앨범 ‘다시 부르기 1’에 수록된 버전은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함께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며 김광석 버전이 가장 유명한 버전으로 굳어졌다.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을 그린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등병의 편지’는 남북 병사들의 공감대를 상징하는 노래로 등장해 흥행에 크게 기여했다.
북한에 ‘이등병의 편지’가 전파된 경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전파됐을 수도 있고 2000년대 초중반 남북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시기에 중국을 통해 유입됐을 수도 있다. 북한은 모든 한국 노래를 금지하지만 ‘이등병의 편지’만은 예외다. 입대 환송 행사에서 청년들과 가족들이 부르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퍼졌다. 2015년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평안북도 소식통은 매년 3월 군 초모(징집) 환송 분위기 속에서 초모생들과 친구들이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고 전했다. 당시 많은 학생이 이 노래가 한국 노래라는 사실을 모르고 불렀다. 일부 담임교사도 군입대 청년들에 대한 연민을 품으며 함께 불렀다. 다만 일부는 ‘이등병의 편지’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연관된 한국 노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북한 당국이 ‘이등병의 편지’의 확산을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2016년 자유아시아방송은 양강도에서 열린 초모 환송 행사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당국은 이 곡이 한국 노래라는 점을 강조하며 단속에 나섰다. 이를 피하기 위해 초모생들과 학생들은 노래 제목을 ‘상등병의 편지’로 바꿔 불렀다. 북한 인민군 계급을 넣어서 어색함을 줄이려는 의도였다. 혜산시 환송 행사에서 국가안전보위부와 불법영상물 단속 조직 ‘109 상무’가 동원돼 노래를 막으려 했지만, 열차가 떠나는 순간 초모생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리며 친구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군가를 부르던 학생들까지 눈물을 흘리며 동참했고, 보위원들도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북한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왜 이렇게 큰 인기를 얻었을까. 북한의 군 복무 기간은 남한의 5배 이상이다. 남성은 10년, 여성은 7년 정도다. 휴가가 거의 없는 데다 군 생활은 열악하다. 이런 환경에서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청년들의 감정을 담은 ‘이등병의 편지’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의 획일적인 충성 서사와 달리 개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을 담은 곡이란 점도 붐을 일으킨 이유다. 북한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등병의 편지’가 계속 불리는 것은 음악이 가진 힘과 청년들의 진솔한 감정이 억압을 뛰어넘는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북한 주민은 ‘이등병의 편지’를 자기들 노래로 오해한다. 일부 탈북민은 나중에 남한 노래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