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교황 후보군' 유흥식 추기경의 성향은 매우 선명한 진보

2025-04-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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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권위주의에 맞서는 가톨릭의 사회적 책임 강조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 신념 따라

차기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유흥식(73) 추기경. / 뉴스1
차기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유흥식(73) 추기경. / 뉴스1
차기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유흥식(73) 추기경에 한국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 추기경은 21일(현지시각)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차기 교황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재임 중인 유 추기경은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고위직에 올라 주목받은 인물이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유 추기경을 포함한 12명의 추기경을 차기 교황 후보로 지목하며 "남북한 화해를 모색한 포콜라레 운동의 일원"이라고 소개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유 추기경을 아시아 출신 깜짝 후보로 언급하며 그의 사회적 불의와 권위주의에 맞서는 행적을 강조했다.

차기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유흥식(73) 추기경. / 뉴스1
차기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유흥식(73) 추기경. / 뉴스1

유 추기경은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16세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7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03년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 2005년 대전교구장 주교로 임명됐으며,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돼 대주교로 승품했다. 2022년에는 한국인 네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성직자부는 전 세계 사제와 부제의 직무, 생활, 신학교 운영을 관장하는 핵심 부서다. 유 추기경은 이곳에서 교황청 내 영향력을 키웠다.

유 추기경은 신학적으론 주류에 속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에서 진보적 후보로 분류된다.

유 추기경은 사목 표어로 요한복음 8장 12절 ‘나는 세상의 빛이다’를 내세우며 소외된 이들을 위한 실천에 힘썼다. 2000년대 대전교구장 시절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 지원에 앞장섰다. 2007년 대전교구는 이주민 사목 센터를 설립해 무료 의료와 법률 상담을 제공했다. 유 추기경은 이주민 가정을 직접 방문하며 그들의 어려움을 청취했다. 북한 지원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네 차례 북한을 방문해 씨감자 배양 시설 축복식과 국제카리타스 대북 협력사업에 참여했다. 2010년부터 매년 북한 어린이 영양 지원 사업을 주도하며 포콜라레 운동의 일치 정신을 실천했다.

정치적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도 유 추기경의 진보적 면모를 보여준다. 1980년대 노태우 정부 시절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대상에 올랐다.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신앙과 정의를 지켰다. 진보 성향인 정의구현사제단에 호의적인 인사로도 유명하다. 유 추기경은 2011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강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라고 강조해 환경 문제를 공론화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기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서는 경찰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며 "국가는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지난해 말 고국에서 벌어진 계엄 선포라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하고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의에는 중립이 없다"라며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촉구했다. 그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갈급한 마음으로 헌재에 호소한다"며 "우리 안에, 저 깊숙이 살아있는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3주기 미사에서 성소수자 차별 반대 발언을 해 포용적 태도를 드러냈다.

차기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유흥식(73) 추기경. / 뉴스1
차기 교황 후보군에 포함된 유흥식(73) 추기경. / 뉴스1

유 추기경은 가톨릭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2019년 아마존 시노드에서 원주민 권익을 옹호하며 "교회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 추기경이 이끄는 교황청 성직자부는 전 세계 신학교 커리큘럼에 빈곤과 환경 문제를 포함하도록 개정했다. 유 추기경은 이 개혁을 주도하며 "사제는 세상의 아픔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 비전과 맥을 함께한다.

유 추기경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계는 긴밀했다. 2014년 대전교구에서 아시아청년대회를 주최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이끌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의 분단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혔다. 유 추기경은 이를 중재하려 남북 대화 창구로 포콜라레 운동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2018년 세계주교시노드에 교황 임명 대의원으로 참석했으며, 2021년 한국 교회의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기획해 교황의 신뢰를 얻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 추기경을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하며 "한국 교회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강하다"고 평가했다.

유 추기경이 능숙하게 이탈리아어를 구사하고 교황청 내 인맥이 두터운 점은 강점이다.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바티칸에서 오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유 추기경을 ‘바티칸의 아시아 대표’로 평가했다.

다만 유 추기경은 도전 과제를 안고 있다. 교황청에서 유럽 출신 추기경이 다수를 차지하며 아시아 출신은 소수이기 때문이다. ‘더 칼리지 오브 카디널스 리포트’는 유 추기경을 41명 후보군에 포함했으나 12명 유력 후보엔 포함하지 않았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직후 가톨릭평화방송에 "교황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몸소 다가가셨다"며 "사제 쇄신 없이는 교회 쇄신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신자들에게 "고요한 평화로 애도해달라"고 당부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사랑과 분단 치유 염원을 강조했다.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병중에도 평화 메시지를 전하며 한국을 언급한 점도 유 추기경은 회고했다. 그는 "교황님은 한국의 아픔을 늘 가슴에 품으셨다"고 전했다.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는 오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 이후 15~20일 내 시작된다. 전 세계 252명 추기경 중 유 추기경을 포함해 80세 미만 135명이 투표권을 갖는다. 콘클라베는 후보 등록 없이 추기경들이 적임자의 이름을 비밀 투표로 적어 3분의 2 이상 득표 시 교황이 선출된다. 투표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이뤄지며 결과는 굴뚝 연기로 알린다. 검은 연기는 선출 실패, 하얀 연기는 선출 성공을 의미한다. 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전 세계가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을 주시한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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