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반도에만 사는데... 낚시 미끼용으로 쓰이는 한국 물고기
2025-04-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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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탕으로 만들었들 때 특히 맛이 뛰어나다는 한국 물고기

맑은 계곡의 돌 틈 사이로 황갈색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간다. 물살을 가르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이 작은 물고기는 한반도의 맑은 물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이름하여 퉁가리. 한국의 청정 하천을 대표하는 고유종이자 작은 몸집 속에 날카로운 방어 본능과 놀라운 적응력을 간직한 생명체다. 한반도 특산종으로 외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토종 물고기인 퉁가리의 세계에 발을 담가보자.
퉁가리는 메기목 퉁가리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한국에만 서식하는 한국 고유종이다. 이 때문에 영어로는 '코리안 토렌트 캣피쉬(Korean torrent catfish)'란 별명이 붙었다. 몸길이는 10~15cm 정도. 메기와 외형이 비슷하지만 크기는 훨씬 작다. 몸 색깔은 고루 황갈색을 띠며, 얼룩무늬나 반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퉁가리는 주로 한강, 임진강, 안성천, 무한천, 삽교천 등 중부 지방의 동해안과 서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에 분포한다. 특히 2급수 이상의 맑고 깨끗한 하천 중·상류의 모래자갈이 많고 물이 빠르게 흐르는 여울에서 서식한다. 환경 오염에 매우 민감해 수질이 나빠지면 금방 사라지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판단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몸의 형태는 독특하다. 머리는 위아래로 납작하고 몸통은 둥글며, 꼬리로 갈수록 좌우로 편평해진다. 비늘이 없고 끈적끈적한 점액질로 덮여 있어 몸이 매우 미끄럽다. 이런 특징 때문에 물속 장애물에서 잘 빠져나갈 수 있다. 입 주변에는 4쌍의 수염이 있다. 그중 2쌍은 머리길이와 비슷하고 나머지 2쌍은 더 짧다. 눈은 매우 작고 피막으로 덮여 있다.
퉁가리는 야행성이다. 낮에는 자갈이나 돌틈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한다. 육식성인 퉁가리는 수서곤충, 지렁이, 갑각류, 작은 물고기를 먹으며, 특히 급류가 흐르는 모래자갈밭을 선호한다. 번식기는 5~6월. 암컷은 수심 20~30cm의 물살이 약한 돌 밑에 알을 붙이고, 수컷은 수정 후 부화할 때까지 알을 지킨다. 알은 약 8일 만에 부화한다. 1.5cm 크기의 새끼는 이미 성어와 비슷한 모습을 띤다. 2년 뒤에는 성체로 성장해 번식을 이어간다.
퉁가리를 잡는 일은 쉽지 않다. 물살이 빠른 여울의 돌틈에 숨어 있어 눈에 띄기 어렵고, 미끄러운 몸 때문에 맨손으로 잡기가 까다롭다. 무엇보다 가슴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에 있는 날카로운 가시가 문제다. 이 가시에는 1~3개의 톱니가 있어 찔리면 심한 통증과 함께 피가 나고 부위가 퉁퉁 붓는다. 독은 없지만 가시가 상처를 헤집어 고통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퉁가리를 ‘물속의 말벌’이라고 부르며 가시의 위력을 경고한다.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퉁가리에 찔리면 한 달 이상 고통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퉁가리를 잡을 땐 낚시나 족대를 사용한다. 또 전통적인 ‘보쌈’ 방식도 흔히 쓰인다. 보쌈은 양푼이나 항아리에 수서곤충을 찧어 넣고, 천이나 양파망으로 싸서 구멍을 낸 뒤 물속에 가라앉히는 방법이다. 몇 시간 뒤 퉁가리가 먹이를 찾아 구멍으로 들어오면 건져 올리면 된다. 낮에는 물이 갈라지는 곳을 막아 돌 밑에 숨어 있는 퉁가리를 잡는 ‘뫼서 잡기’도 사용된다. 어떤 방법을 쓰든 간에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장갑을 착용하거나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퉁가리는 민물고기탕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매운탕, 구이, 심지어 회로도 즐길 수 있다. 강원도에서는 퉁가리를 초장에 찍어 회로 먹는 독특한 식문화가 있다. 다만 민물고기인 까닭에 기생충 감염에 유의해야 한다. 매운탕으로 요리할 때는 퉁가리의 담백한 살과 쫄깃한 식감이 고추장 양념과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낸다. 퉁가리를 깨끗이 손질해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한다. 냄비에 물,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양파를 넣고 끓이다가 손질한 퉁가리를 넣는다. 쑥갓이나 미나리 같은 채소를 추가해 10~15분 더 끓이면 매운탕을 완성할 수 있다. 퉁가리의 부드러운 살과 매콤한 국물이 조화를 이뤄 밥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퉁가리는 식용뿐 아니라 쏘가리 낚시 미끼로도 유명하다. 단단한 생명력과 민첩함 덕에 미끼로 사용할 때 쏘가리가 쉽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퉁가리 서식지가 감소하면서 미끼용으로도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퉁가리를 관상어로 키우기도 하지만, 맑은 물과 자갈 환경을 유지해야 해 사육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