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방화 등 강력 범죄 유발하는 층간소음 관련 대책이 여전히 부실한 이유
2025-04-2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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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 반복
서울 관악구 아파트 화재 사건의 방화 용의자가 과거 층간소음을 둘러싼 갈등을 겪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층간소음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정부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상담은 2023년 한 해 동안 3만 302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4만 6596건에 비해 29.1% 줄어든 수치지만, 센터가 처음 문을 연 2012년 8796건과 비교하면 275% 증가한 것이다.
초기 상담 이후 실제 추가 상담이나 현장 진단으로 이어진 사례는 각각 5224건과 1888건에 그쳤다. 상담은 많지만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는 경우는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이웃사이센터가 층간소음 갈등 해소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측정을 위해 거주 공간을 수 시간에서 하루 이상 비워야 하는 조건 탓에 소음 측정 자체가 어렵고, 측정에 성공하더라도 법적 기준치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이웃사이센터가 소음을 측정한 3609건 가운데 법적 기준을 초과한 사례는 416건으로, 전체의 11.5%에 불과했다. 나머지 3193건, 즉 88.5%는 기준 이내로 측정됐다. 이는 현행 기준이 지나치게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현행 기준은 2023년 1월 개정을 통해 주간 39dB, 야간 34dB로 각각 4dB 낮춰졌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기준인 주간 35dB, 야간 30dB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분쟁이 정부 조정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와 국토교통부 중앙공동주택관리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조정 신청은 각각 22건, 176건으로 연평균 2건, 20건에 불과했다.
이처럼 정부 개입이 미미한 사이 층간소음 갈등은 강력 범죄로 비화하고 있다.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가 2023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 4월까지 층간소음 관련 112 신고는 총 13만 7912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약 160건, 시간당 7건꼴로 신고가 들어온 셈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8%는 폭력으로, 11.0%는 가정폭력, 8.2%는 스토킹으로 종결됐다. 층간소음이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범죄로 이어지는 양상이 통계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경찰 중재나 개입을 요청한 신고 3만 1150건 중 93.8%가 2회 이상 반복된 사례였다.
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등 5대 강력범죄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급증했다. 온라인상에서는 고무망치나 스피커 등 '보복용' 제품까지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문제의 핵심은 소음이 근본적으로 차단되는 구조의 주거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부는 2022년 8월부터 층간소음 사후확인제를 도입했지만, 실효성 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제도는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대해 사용승인 전 소음 측정을 실시하고, 49dB을 넘기면 보완시공이나 손해배상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전체의 2~5%만을 샘플로 테스트하는 방식이어서 대다수 세대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측정 결과는 분양자에게만 공개되며 실거주자는 알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시공사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40억 원, 12억 원을 투입해 리모델링 사업을 시도했지만, 실적은 전무하다.
경실련은 지난 17일 모든 공동주거시설 신축 시 실측 전수조사를 의무화하고, 입주자에게 결과를 고지하도록 하는 '공동주거시설 층간소음 관리법' 제정을 국회에 청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