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별점은 저주... 반납합니다”

2025-04-2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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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반납에 등재 거부 움직임까지... 흔들리는 '미쉐린 가이드'의 권위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세계적 미식 평가 안내서인 ‘미쉐린 가이드’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다. 유럽 식당가에서 미쉐린 별점을 자진 반납하거나 등재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오랜 세월 미식의 기준으로 여겨졌지만, 파인다이닝 업계의 변화와 새로운 비판에 직면하며 그 입지가 도전받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별점
미쉐린 가이드 별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20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루카의 레스토랑 질리오는 2023년 10월 미쉐린 측에 자신들이 받은 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공동 소유주 베네데토 룰로는 미쉐린 별점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별점을 받은 뒤 손님들이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음식과 격식을 갖춘 분위기를 기대하며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식당을 지향한다. 티셔츠와 샌들, 반바지 차림으로도 고급 레스토랑에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질리오는 미쉐린 별이 자신들의 캐주얼한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별을 반납했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분자요리의 대가로 알려진 프랑스 셰프 마르크 베라는 메제브 스키 리조트에 새로 연 레스토랑에서 미쉐린 비평가들의 출입을 아예 금지했다. 그는 미쉐린의 평가가 자신들의 요리 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례들은 미쉐린 별점이 더 이상 무조건적인 영예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쉐린 별을 둘러싼 셰프들의 반발은 단순히 이미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별점을 받으면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이 따른다. 2011년 런던의 미쉐린 선정 레스토랑 피터샴 너서리에서 일했던 셰프 스카이 긴겔은 미쉐린 별이 ‘저주’였다고 토로했다. 그는 별점 이후 일이 지나치게 바빠졌고, 자신의 캐주얼한 스타일과 달리 파인다이닝을 기대하는 손님들의 불만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레스토랑을 떠났으며, 다시는 미쉐린 별을 받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런 반발은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방식과 기준에 대한 불만과도 연결된다. 미쉐린은 익명의 평가원들이 레스토랑을 방문해 음식의 품질, 창의성, 일관성 등을 기준으로 별점을 부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평가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프랑스 요리 중심의 기준이 다른 지역의 요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예를 들어, 인도 요리는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음에도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된 사례가 드물다. 이는 미쉐린의 평가가 유럽, 특히 프랑스 요리에 치우쳤다는 지적을 뒷받침한다.

더 큰 논란은 미쉐린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에서 비롯된다. 음식 비평가 앤디 헤일러는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미쉐린은 비즈니스 모델을 바꿨다”며 “인쇄된 가이드북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한국, 미국, 중국 등의 관광청으로부터 자금을 받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헤일러는 “미쉐린이 관광청에서 수백만 달러를 받고도 ‘식당들이 형편없어 별을 줄 수 없다’고 말할 리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을 위해 한국관광공사와 한식재단이 4억 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이는 미쉐린이 정부나 관광청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혹을 키웠다.

공정성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9년 한국에서는 미쉐린 가이드의 별점 선정을 둘러싼 ‘별 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한 한식 셰프는 미쉐린 측이 연간 4만 달러(약 5000만 원) 이상의 컨설팅 비용과 평가원들의 체류비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 셰프는 미쉐린의 요구를 거절하자 2016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에서 자신의 식당이 제외됐다고 밝혔다.

KBS 보도에 따르면 유명 식당이 수천만 원의 컨설팅 비용을 지불한 뒤 3스타를 받았다. 미쉐린 측은 “별을 대가로 돈을 받지 않으며, 평가원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반박했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미쉐린 가이드 측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컨설팅을 제안한 인물은 미쉐린 직원이 아니다”며 논란을 일축하려 했으나, 업계의 신뢰 하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미쉐린의 평가 방식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미쉐린은 평가원들이 익명으로 레스토랑을 방문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평가원들이 신분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서울에서 평가원들이 고급 호텔을 방문하며 자료를 요청하거나 인스펙션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미쉐린의 익명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또한 미쉐린이 온라인에 올리는 평가 글이 인공지능(AI)으로 작성된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미쉐린의 평가가 점점 더 기계적이고 표준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미쉐린도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신세대 미식가와 인플루언서의 목소리를 반영하려 노력했으며, 2020년에는 지속 가능한 미식을 평가하는 그린 스타를 도입했다. 그린 스타는 로컬 및 제철 식재료 사용, 음식물 쓰레기 감축, 생물 다양성 보존 등을 기준으로 레스토랑을 선정한다. 현재까지 전 세계 290곳의 레스토랑이 그린 스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2곳이 선정됐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쉐린의 핵심 평가 시스템인 별점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은 여전하다.

일부 셰프들은 미쉐린의 기준이 요리의 창의성을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미쉐린 스타를 유지하려면 일관성과 높은 품질을 계속 증명해야 하며, 이는 셰프들에게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요리를 시도하기보다 안전한 선택을 강요할 수 있다. 영국 셰프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는 1999년 미쉐린 3스타를 반납하며 “미쉐린의 기준이 나를 얽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쉐린 평가원들이 자신의 요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AI 툴로 제작한 6컷만화.
AI 툴로 제작한 6컷만화.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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