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만취하면 잔뜩 사오던 국민빵…일본보다 훨씬 더 먼 곳 출신이었다
2025-04-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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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푹신한 맛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사랑받아
아빠가 술 취하면 잔뜩 사 오던 빵에는 늘 단팥빵, 크림빵, 땅콩 크림빵, 소보루빵 그리고 카스텔라가 있었다. 오랜 시간 한국에서 명불허전 클래식 빵으로 어른과 아이에게 사랑받는 이 빵의 원산지가 사실은 일본이 아닌 머나먼 외국으로 알려져 그 기원에 대해 알아봤다.

일본 빵으로 알려진 카스텔라는 사실 포르투갈에서 유래된 전통적인 스펀지케이크다. 원래 이름은 'Pão de Ló(파오 드 로)'였다. 이 빵은 달걀, 설탕, 밀가루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며 별다른 유지방 없이도 부드럽고 촉촉한 질감을 자랑한다.
파오 드 로는 유럽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디저트 중 하나로, 특히 포르투갈에서 성탄절이나 부활절 등 큰 명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적인 전통 케이크다. 이 빵이 일본으로 전해진 것은 16세기 중반, 정확히는 1543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나가사키 지역은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한 항구 도시였으며 포르투갈 선교사들과 상인들이 일본에 도래하면서 다양한 서양 문물과 함께 음식 문화도 함께 들어왔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파오 드 로를 소개했을 때 일본인들은 그 맛과 질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일본에서는 설탕이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 달콤한 케이크는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일본식으로 개량하면서 오늘날의 카스텔라가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이 빵을 '카스테라(カステラ)'라고 불렀는데 이는 포르투갈의 고대 왕국명인 'Castela(카스텔라)'에서 유래했다. Castela는 스페인어로 Castile을 의미하는 말로, 포르투갈인들이 이 빵을 'Pão de Castela' 즉 '카스티야의 빵'이라 부른 데서 이름이 전해졌다.
일본에서 카스텔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일본식 디저트로 정착됐다. 특히 나가사키는 일본 카스텔라의 본고장으로 손꼽히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전통 제과점이 자리 잡고 있다. 나가사키 카스텔라는 일반적인 스펀지케이크보다 훨씬 더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을 가지고 있으며 천천히 구워내어 달걀의 풍미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설탕 결정이 바닥에 살짝 깔려 있어 먹을 때 약간의 바삭한 식감이 느껴지는 것도 특징이다. 현대에는 꿀, 녹차, 치즈 등 다양한 맛을 가미한 카스텔라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단순한 재료로 정성스럽게 구워내는 전통 방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한국으로 카스텔라가 본격적으로 전파된 시기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로,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식 제과 중 하나로 소개됐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이 시기 한국 사회는 경제 발전과 함께 식문화도 빠르게 서구화됐고 일본 제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카스텔라는 고급스러운 간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카스텔라는 제과점과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빵이 됐고 2010년대에는 대만식 카스텔라 열풍이 불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대만식 카스텔라는 일본식 카스텔라와는 달리 부풀어 오르는 형태가 강하고 식감은 더 부드럽고 촉촉하며 흔들었을 때 흔들리는 정도가 눈에 띌 정도로 폭신폭신한 것이 특징이다. 이 스타일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전국적인 유행을 일으켰고 많은 전문점이 생겨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이 점차 사그라들었고 현재는 다양한 형태의 카스텔라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카스텔라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재료와 정직한 맛 부드러운 식감 때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디저트로, 특별한 날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가볍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카스텔라는 커피나 차와 함께 먹기에도 적당한 맛과 질감을 지니고 있어 다양한 연령층에게 두루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늘날에도 카스텔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나가사키 스타일부터 트렌디한 대만식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가며 한국인의 식탁 위에 꾸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처럼 카스텔라빵은 포르투갈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문화와 시대를 거치며 변모해 온 음식이다. 그 변화 속에서도 기본에 충실한 레시피와 정성스러운 제작 방식은 변하지 않았고 이것이야말로 카스텔라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