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요원 출신 홍장원에게 “싸움 잘하냐”라고 묻자 나온 말 (영상)

2025-04-19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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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 고통스러움, 괴로움, 아쉬움, 안타까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국정원의 잠재력과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30년에 이르는 국정원 직원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봤다.

12·3 비상계엄의 내막을 세상에 알린 홍 전 차장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707특수임무단 중대장 등 군에서 5년간 복무한 뒤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즉 현재의 국정원에서 이른바 ‘블랙 요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블랙 요원이란 해외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는 정보 요원을 의미한다. 정체를 숨기고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하여 정보 수집, 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홍 전 차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에 국정원을 떠났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복귀해 대북특보에 이어 국정원 2인자인 1차장을 지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 사태 때 주요 인사에 대한 체포를 지시했다고 폭로한 뒤 해임됐다.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홍 전 차장은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먼저 국정원의 국제적 위상을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북한이 1만 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한 사실을 국정원이 지난해 10월 28일 전격 확인했다”며 “이 정보를 확인했을 때 세계 정보기관들, 특히 나토 국가들이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일로 제가 나토에서 정보 브리핑까지 했다. 국정원이 야구의 메이저리그, 축구의 프리미어리그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며 “국정원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대단히 역량 있는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신했다.

국정원은 2012년 대선 개입과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금지와 대공수사권 폐지라는 강력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국정원의 역량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홍 전 차장은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홍 전 차장은 “국내 정보와 대공수사권이 없으니 아무것도 안 한다고? 절대 아니다”라며 “국정원은 훨씬 더 특화된 업무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분명 국가 이익에 기여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국내 정보도 중요하지만, 해외 정보 역량을 통해 K-팝처럼 글로벌 정보기관 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 전 차장은 미국 CIA,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의 사례를 들며 국정원의 소통 전략을 강조했다. 그는 “CIA와 MI6 수장들이 파이낸셜타임스 행사에서 캐주얼한 복장으로 관객과 유머를 나누며 소통했다. 모사드도 세계 곳곳의 유대인 네트워크를 통해 신뢰를 쌓는다”며 “국정원도 어떤 정보를 공개하고 어떤 정보를 숨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공개해야 할 정보를 숨기면 오해를 받고, 숨겨야 할 정보가 공개되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의 체포 지시 폭로 이후 홍 전 차장은 정치권과 일부 언론, 유튜버들의 ‘좌표 찍기’ 공격에 시달렸다. 그는 “최근 이 일을 복기하며 권력과 정권의 카르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영화 ‘내부자들’ 시즌 2나 ‘홍장원판 내부자들’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탄핵 반대를 목표로 한두 사람쯤 권력의 수레바퀴에 깔려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공격의 강도에 대해 “메이저 언론과 여론 주도층 유튜버들이 가세하니 판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며 “돈을 벌려는 유튜버나 지라시들이 배설물 수준의 콘텐츠를 쏟아냈다. 놀라운 건 그중 많은 내용이 국정원 내부자만 알 수 있는 정보였다는 점이다”라고 털어놨다. 국정원 내부에서 정보가 유출됐다는 것이다.

블랙 요원 출신인 홍 전 차장은 싸움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묻는 질문에 유쾌하게 응했다. 진행자가 무술을 잘하는지 묻자 홍 전 차장은 “예?”라며 잠시 당황하더니 “동그란 공으로 하는 운동은 못했다. 축구 같은 건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했다”고 답했다.

홍 전 차장의 국정원 선배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한 유튜브 방송에서 홍 전 차장의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오는 데 대해 “홍 전 차장은 프로다. 장난치면 진짜 불구가 된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진행자가 이 일을 언급하자 홍 전 차장은 “환갑이 지나 블랙 요원이 그레이 요원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싸움 실력에 대해 굳이 부인하지 않은 셈이다.

홍 전 차장은 30년간의 국정원 근무를 돌아보며 “정말 재미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블랙 요원 출신이 차장까지 오른 건 국정원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이는 국정원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섬뜩한 순간도 있었지만 보람도 컸다. 관심 있는 이들에게 국정원은 다양한 일을 경험할 수 있는 도전할 만한 직업”이라고 추천했다.

홍 전 차장은 국정원의 미래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국정원은 국민과 더 가까워져야 한다. 소통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며 “국내 정보와 대공수사권 논란은 부차적이다. 예산을 늘리고 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정보기관으로 우뚝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방문 경험을 언급하며 “전쟁터에서 지정학과 현장감을 배웠다. 국정원이 이런 글로벌 역량을 더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전 차장은 해임 이후의 삶에 대해 “30년간 상관, 조직, 임무에 맞춰 살아왔다. 이제는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120일간 잠 못 이루는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신나는 일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팬카페 1만 2000명의 응원에 감사를 표하며 “골목에서 뭇매 맞을 때 CBS가 반론 기회를 줬고, 낯선 이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진행자가 윤 전 대통령과 마주할 일이 생긴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지 묻자 홍 전 차장은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 한구석엔 고통스러움, 괴로움, 아쉬움, 안타까움이 틀림없이 있다"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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