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인생서 단 1번, 딱 73분…박항서 감독이 아쉬워하는 '유일한' 흑역사

2025-04-1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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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를 빛낸 명장 박항서 감독의 현역 시절

한국 축구를 빛낸 명장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취재진과 인터뷰 도중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연합뉴스
한국 축구를 빛낸 명장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취재진과 인터뷰 도중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연합뉴스
한국 축구를 빛낸 명장인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에게도 흑역사가 있다. 박 감독은 자신의 이런 부분을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다.

박항서 감독은 1959년 1월 4일 경남 산청군 생초면에서 태어났다.

박 감독은 어린 시절 생초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면서 공부를 병행했다. 이후 서울 경신고에 진학해 당시 이경이 축구부 감독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박 감독은 남들보다 늦게 엘리트 축구 선수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왕성한 활동량과 불도저 같은 투지가 돋보인 미드필더였다. 짧으면서도 빠른 패스를 중요시했으며, 항상 전력을 다하는 근성이 있는 선수라는 의미에서 악바리, 밧데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 감독은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를 거쳐 한양대와 실업 구단인 제일은행 축구단(1981년), 군 복무로 육군 축구단(1981~1983), 프로축구 구단인 럭키금성 황소 (1984~1988년)에서 뛰었다. 그는 다른 역대 축구 국가대표 감독에 비해 짧은 4년의 프로 선수 시절을 보냈다.

박항서 감독 현역 시절 모습 영상 / 유튜브, 축나잇

하지만 박 감독은 당시 같은 포지션의 스타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성인 축구 국가대표로 부름을 거의 받지 못했다. 박 감독의 작은 키(166cm)와 몸집 등 핸디캡이 장점을 가렸다.

박 감독이 현역 시절 성인 축구 국가대표로 뛴 A매치는 단 1경기다. 1981년 3월에 열린 한일 정기전에서 전반 17분에 교체 투입돼 73분간 그라운드에서 뛴 게 A매치 출전 기록의 전부다. A매치에서 골을 넣은 기록도 없다.

박 감독은 지금도 현역 시절 국가대표 A매치 커리어를 가장 아쉬워하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1988년 29세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소위 말해 남들보다 빨리 그라운드를 떠났다.

박항서 감독이 경기 중에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연합뉴스
박항서 감독이 경기 중에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박 감독은 지도자로 큰 두각을 드러냈다. 프로축구 구단 트레이너와 코치를 거쳐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그는 히딩크 감독과 함께 대표팀을 이끌며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월드컵 4강 진출에 공헌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잠재된 지도자 능력을 꽃피웠다. 한국 축구를 빛낸 대표적인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감독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는 5년 4개월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현재까지도 베트남 축구대표팀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으로 남고 있다.

박 감독은 당시 아시아에서도 축구 약체로 분류된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맡고 나서 2018 AFC U-23 아시안컵(준우승)에 이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4위)에서도 마찬가지로 대회마다 베트남의 성적을 올리는 등 베트남 축구에서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웠다. 그는 2023 미쓰비시 전기컵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베트남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박 감독은 지난 1월에 전북특별자치도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최근에는 4연임에 성공한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대한축구협회의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home 손기영 기자 sky@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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