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대신 감자... 지금 미국에서 희한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영상)

2025-04-1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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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에그 대신 이스터 포테이토 만드는 미국 사람들

미국인들이 감자가 부족해 이스터 에그 대신 이스터 감자를 만들고 있다. / 미국 WESH 2 방송 영상 캡처
미국인들이 감자가 부족해 이스터 에그 대신 이스터 감자를 만들고 있다. / 미국 WESH 2 방송 영상 캡처

부활절 아침.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든 달걀 바구니를 들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미국 곳곳에서 울려 퍼져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올해 부활절은 뭔가 다르다. 달걀 대신 감자, 심지어 마시멜로우나 돌에 색을 칠해 이스터 에그를 만드는 풍경이 페이스북과 엑스 같은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미국의 달걀 부족 사태가 부활절의 전통을 뒤흔들며 사람들이 창의적이면서도 절박한 대안을 찾게 만든 것이다.

미국인들이 달걀 대신 감자, 심지어 마시멜로우나 돌에 색을 칠해 이스터 에그를 만드는 풍경이 페이스북과 엑스 같은 SNS를 가득 채우고 있다. / 미국 WESH 2 방송 영상 캡처

미국의 달걀 부족 사태는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일상과 전통을 뒤바꾸는 위기로 다가왔다. 올해 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확산으로 수백만 마리의 닭이 폐사하며 달걀 공급이 급격히 줄었다. 한두 달 안에 7000만~1억 개의 달걀을 수입해야 할 정도로 달걀 공급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달걀 도매가격은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 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 2월 달걀 가격은 전년과 견줘 55.4%나 급등했다. 반면 감자 가격은 13.5% 상승에 그쳐 경제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뉴욕의 슈퍼마켓엔 달걀 구매를 1인당 세 판으로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었고, 퀸즈의 베이글 가게는 달걀 메뉴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국, 폴란드, 인도네시아 등에서 달걀 수입을 문의할 정도로 미국의 달걀 위기는 국제적 이슈가 됐다. 하지만 유통 기한이 짧고 깨지기 쉬운 달걀의 특성상 수입은 쉽지 않다. 유럽연합 역시 조류인플루엔자로 달걀 부족을 겪고 있다. 프랑스 양계업체는 미국의 수출 요청에 “공급 물량이 없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활절은 달걀 부족의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부활절은 오는 20일(현지시각)에 기념된다. 부활절 시즌은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3월 5일)부터 부활절까지 약 50일간 이어진다. 성주간은 13일 종려주일로 시작해 17일 성목요일, 18일 성금요일, 19일 성토요일을 거쳐 부활절로 절정을 이룬다.

이스터 에그 / 픽사베이
이스터 에그 / 픽사베이

미국에서 부활절은 달걀을 색칠하고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이스터 에그 헌트’로 유명하다. 백악관조차 매년 ‘이스터 에그롤’ 행사를 열어 달걀 굴리기 축제를 벌인다. 매년 부활절마다 3000억 개의 달걀이 판매될 정도로 달걀은 이 시기의 핵심이다. 하지만 올해는 달걀 치솟으며 소비자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ABC 방송에 따르면 감자에 색을 칠하거나 플라스틱, 찰흙으로 만든 장난감 달걀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공예품 소매업체 마이클스는 달걀 모형 키트 판매가 전년 대비 20% 늘었다고 밝혔다. 달걀 장식 키트 업체 파스의 설문에서는 94%가 부활절에 달걀을 장식할 계획이라고 답했지만, 78%는 예년보다 적게 구매하겠다고 했다. SNS에는 “올해는 아이들이 감자에 색칠했다”는 사연과 함께 알록달록한 감자 사진이 올라오고 있다. 어떤 이들은 돌이나 마시멜로우를 활용해 부활절을 기념한다.

부활절에 달걀이 왜 이렇게 중요한 걸까. 그 뿌리는 기독교와 고대 문화가 얽힌 깊은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주요 축일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한 사건을 중심에 둔다. 달걀은 이 부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껍질을 깨고 새로운 생명이 나오는 달걀은 예수의 무덤에서 부활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달걀은 기독교 이전 이교도 시대부터 봄과 새로운 삶을 상징했다. 고대 유럽에서는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를 기리며 달걀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고, 이 전통이 기독교와 만나 부활절 달걀로 발전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순절 40일 동안 달걀 섭취가 금지됐는데, 부활절에 금식이 끝나며 달걀을 먹는 행위가 부활의 기쁨을 배가시키는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동유럽에서는 화려한 달걀 장식이 문화로 발전했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에서는 정교한 문양을 새긴 ‘피산키’ 달걀이 전통이며, 러시아에서는 파베르제 가문이 보석으로 장식한 달걀을 황실에 바쳤다. 그리스에서는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달걀을 부딪치며 운세를 점치는 풍습이 있다.

미국에서는 달걀을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상으로 물들이고, 아이들이 바구니에 담아 이웃과 나누는 전통이 있다. 유럽에서는 진짜 달걀 대신 초콜릿 달걀이 주로 사용되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삶은 달걀을 선호한다. 1875년 영국 캐드버리가 초콜릿 달걀을 개발하며 상업화했지만, 미국의 부활절은 손으로 직접 색칠한 달걀이 주인공이다. 이런 전통이 달걀 부족 사태로 위협받자 미국들은 감자 같은 대체재로 눈을 돌렸다. 감자는 저렴하고 구하기 쉬울 뿐 아니라 달걀처럼 단단한 표면에 색을 입히기도 쉽다. 하지만 감자가 아무리 창의적 대안이라 해도 달걀의 상징성과 문화적 무게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달걀 부족은 단순히 부활절의 풍경만 바꾼 게 아니다. 달걀은 미국인 식탁에서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사랑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식당 메뉴 가격이 오르고, 가정에서는 달걀 요리를 줄이는 실정이다. 미국 농무부는 달걀 수입을 늘리는 등 대책을 모색 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부활절이 지나도 달걀 공급이 정상화하지 않는다면 감자 이스터 에그는 2025년을 상징하는 씁쓸한 풍경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웃으며 색칠한 감자를 굴리고 부활의 기쁨을 나름의 방식으로 나누고 있다. 어쩌면 부활절의 본질인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것을 가장 생생히 보여주는 장면일 수도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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