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쌀값 대폭등 미스터리... 한국도 위험할 수 있다

2025-04-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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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쌀 소동'으로 흔들리는 일본 식탁
수입 쌀에 거부감 큰 한국 안심할 수 없다

일본의 논 / 픽사베이
일본의 논 / 픽사베이

일본 식탁이 흔들리고 있다. 쌀이 사치품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 쌀값 폭등 사태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일본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과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 언론은 최근 쌀값 폭등을 ‘레이와 쌀 소동’이라고 명명하며 1918년의 다이쇼 쌀 소동, 1993년의 헤이세이 쌀 파동에 비견되는 최악의 위기라고 보도한다. 한국은 쌀값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일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경고한다.

벼 / 픽사베이
벼 / 픽사베이

일본의 쌀값 폭등은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니가타산 고시히카리 60kg 도매가격이 2만 8050엔(약 25만원)을 기록했다. 1994년 헤이세이 쌀 파동 이후 30년 만의 최고치다. 지난 2월 일본에서 60kg 햅쌀의 도매가는 2만 5927엔이다. 전년 동기 대비 69% 상승한 액수다. 5kg 기준 2023년 초만 해도 2000~2200엔 수준이던 소매 쌀값은 불과 2년 만에 1.5~2배로 급등했다. 최근 5kg 쌀 소매가는 평균 4077엔에 이른다. 일부 매장에서는 5000엔(5만원)을 넘는 가격표도 등장했다. 한국보다 2배가량 비싼 가격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쌀값이 14주 연속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쌀값 폭등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일본의 주요 쌀 산지인 니가타, 이시카와, 야마가타, 후쿠시마 등에서 벼 수확량이 급감했다. 특히 고시히카리 품종이 더위에 취약해 큰 타격을 받았다. 일본 국립환경연구소는 지난해 여름 기온이 관측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이상고온은 쌀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전분 축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속이 부실한 벼가 늘었다.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의 급증이 쌀 수요를 부추겼다. 코로나19 이후 일본을 찾은 관광객들이 초밥과 덮밥 같은 쌀 요리를 즐기며 외식업계의 쌀 소비가 급증했다.

문제는 공급 부족만이 아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지난해 쌀 수확량이 679만 톤으로 전년보다 18만 톤 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농협 등 주요 집하업체가 매입한 쌀은 221만 톤에 불과하다. 전년과 견줘 23만 톤이 오히려 감소했다. 생산은 늘었는데 유통량은 줄어든 기묘한 상황이다. 에토 타쿠 농림수산상이 “어딘가에 쌓인 쌀이 부족을 초래했다”며 투기세력을 지목했지만 명확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와타나베 요시아키 니가타식량농업대학 명예학장은 주간지 슈칸분슌에서 “쌀 통계조사원이 줄어 정확한 생산량 파악이 어렵다”고 비판했다. 과거 수만 명에 달하던 조사원이 예산 문제로 축소되며, 소규모 표본으로 전체 생산량을 추정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 직거래 증가로 정부가 유통 구조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소비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도쿄의 삼각김밥 전문점 사장은 “쌀값이 20% 이상 뛰어 메뉴를 줄였지만 한계”라며 “가격을 더 올리면 손님이 끊길 것”이라고 NHK에 하소연했다. 일부 슈퍼마켓은 쌀 품종을 8종에서 2종으로 줄였다. 1인당 구매를 10kg으로 제한하는 슈퍼마켓도 있다. 심지어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쌀을 사가는 모습까지 포착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농림수산성이 비축미 21만 톤(밥 29억 그릇 분량)을 방출하기로 지난 2월 결정했다. 심각한 흉작이 아닌 한 비축미를 풀지 않던 기존 원칙을 깨는 초강수였다. 지난달 15만 톤이 농협을 통해 시중에 유통됐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비축미 유통에 드는 운송비와 인건비, 연간 수백억 엔의 유지비가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하락은 10%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미국산 쌀이 5kg당 2500~3000엔에 팔리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자국 쌀의 품질을 내세우며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논 / 픽사베이
일본의 논 / 픽사베이

한국의 쌀값은 아직 안정적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는 한국도 언제든 비슷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쌀 시장은 구조적으로 취약한 요소를 여럿 안고 있다. 첫째, 기후위기의 영향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한국은 1894년 기상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더운 여름을 기록했다. 고온으로 벼의 전분 합성 효소 활성이 떨어져 쌀 품질이 떨어졌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수확 후 품질이 떨어지는 벼가 많다는 말이 농민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실제로 1등급 쌀 비율이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도 폭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바 있다. 기후변화가 쌀 생산을 장기적으로 위협하는 셈이다.

둘째, 농경지와 농가 인구 감소가 심각하다. 1990년 210만 헥타르이던 농경지는 2024년 150만 헥타르로 30% 줄었고, 농가 인구는 660만 명에서 208만 명으로 3분의 1로 급감했다. 특히 쌀 농사를 짓는 농가의 평균 연령은 60세를 넘어섰다. 고령화로 농업 노동력이 줄어들고 농지 개발로 논이 사라져 장기적으로 쌀 생산 기반이 약화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30년까지 농가 인구가 150만 명 이하로 줄어들고, 농경지는 130만 헥타르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쌀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셋째, 쌀 소비 패턴 변화와 수입 의존도도 문제다. 2023년 1인당 쌀 소비량은 55.8kg. 1970년(136.4kg)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반면 밀가루 기반 음식과 육류 소비는 증가하며 쌀의 식탁 점유율이 줄었다. 하지만 쌀은 여전히 한국인의 주식인 까닭에 수요가 갑작스럽게 늘거나 공급이 줄면 가격 급등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쌀 재고는 34.7%에 이른다. 이 재고가 쌀값 안정에 기여하지만 흉작이나 수요 급증 시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식량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2023년 식량 자급률은 44.5%로, 쌀을 제외하면 20%대에 불과하다. 글로벌 경제가 열려 있던 시기에는 식량 수입으로 버텼지만 블록 경제와 기후위기로 수입이 위협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으로 곡물 수출이 제한된 사례는 한국의 취약성을 잘 보여준다.

넷째, 쌀 유통 구조의 비효율성도 잠재적 위험이다. 한국의 쌀 유통은 농협과 RPC(미곡종합처리장)가 주도하지만 중간 마진과 물류비가 높아 소비자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농가는 20kg 쌀을 4만 원에 넘기지만 소비자는 6만 원 이상을 내고 사야 한다. 유통 구조가 투명하지 않은 셈이다. 일본처럼 투기나 사재기가 발생하면 유통망이 이를 증폭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책적 대응의 한계도 우려스럽다. 한국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비축미 방출과 직불금 제도를 운영한다. 지난해 기준 정부 비축미는 약 90만 톤으로, 연간 소비량의 25%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처럼 비축미 방출이 가격 안정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4년 쌀 생산량이 370만 톤으로, 소비량 350만 톤을 약간 상회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흉작이 반복되면 이 균형은 쉽게 깨진다. 게다가 직불금 중심의 농업 보조금은 농가 소득을 보장하지만 생산량 조절이나 품질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쌀값 폭등에 비축미와 수입 쌀로 대응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수입 쌀에 대한 소비자 거부감이 큰 편이다. 장기적인 식량 안보 전략을 짜지 않으면 식량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일본의 레이와 쌀 소동은 한국에 강한 경고를 던진다. 한국은 현재 쌀값 안정과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기후위기, 농가 고령화, 유통 비효율, 수입 의존도를 고려하면 식량 안보 위기가 시간문제일 수 있다. 폭염과 태풍으로 흉작이 닥치면 쌀값 폭등은 현실이 될 수 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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