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진 한국 갑각류
2025-04-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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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한국 갑각류

한때 맑은 계곡과 개울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가재가 이제는 흔적을 찾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돌 밑에 숨어 밤이면 슬그머니 나와 먹이를 찾던 이 작은 갑각류는 한국의 청정 자연을 상징하는 생물이었다. 하지만 환경오염, 서식지 파괴, 외래종의 침입으로 가재의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들며 멸종위기종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반도의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가재가 왜 사라지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가재는 갑각류 중 가재하목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주로 참가재와 만주가재가 토종 가재로 알려져 있다. 참가재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한다. 맑은 1급수나 2급수 환경에서 서식한다. 이들은 낮은 수온(대략 22도 이하)에서만 생존할 수 있는 냉수종이다. 몸길이는 약 5cm 정도다. 돌 밑이나 파놓은 구멍에 숨어 낮 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한다. 먹이는 잡식성이다. 벌레, 올챙이, 달팽이뿐 아니라 낙엽이나 유목도 먹는다. 가재 입은 벚꽃잎 모양의 작은 갑각 두 개로 이뤄져 있다. 이 갑각이 앞니처럼 작동해 먹이를 자른다. 먹이를 먹을 때 입 주변의 얇은 다리 여섯 개가 물살을 일으킨다. 사육 중 먹이를 주면 마치 ‘뿌우’ 소리를 내는 듯한 모습이 관찰된다. 위기 상황에서는 꼬리지느러미를 이용해 몸을 ㄷ자로 굽히며 뒤로 튕기듯 헤엄쳐 도망친다. 집게는 사냥, 과시, 또는 경쟁자와의 세력 다툼에 주로 사용된다.
만주가재는 주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 서식한다. 참가재와 비교해 이마뿔이 좁고 윗면이 오목하며, 배마디의 옆갑이 뾰족한 특징을 가진다. 크기는 참가재와 비슷한 5cm 안팎이다. 이들은 주로 지하수가 샘솟는 도랑이나 인적이 드문 산속 계곡에서 발견된다. 놀랍게도 오염된 것처럼 보이는 터널 배수로에서도 가재가 나타나곤 하는데, 이는 대개 1급수급 지하수가 흐르는 경우다. 가재는 은둔 생활을 선호해 초보자가 서식지에서 몇 시간 뒤져도 한두 마리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대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계곡이나 웅덩이에서 옆새우가 보인다면 근처에 가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팁이다.
가재의 생태는 독특하다. 가을에 짝짓기를 해 이듬해 봄에 알을 낳는다. 알은 어미의 복부에 붙어 5~8주 후 부화하며, 새끼는 몇 주 동안 어미 곁에서 자란다. 성숙까지는 몇 주에서 몇 년이 걸리며, 종에 따라 1~20년을 산다. 드물게 돌연변이로 푸른색을 띠는 개체가 발견되는데, 이는 100만 분의 1 확률로 태어난다고 한다. 푸른 가재는 자라면서 색이 점점 짙어지고 불투명해진다. 천적이 적은 특정 계곡에서는 푸른 가재가 여러 마리 발견되기도 하지만, 색깔 때문에 외래종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 가재는 한국의 계곡과 개울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 도봉산 자락의 야산 개울에서 가재가 널려 있었고, 당시 어린이들은 가재 잡기를 즐기며 여름을 보냈다. 먹을 게 없던 시절 쏠쏠한 간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환경 변화로 가재의 서식지는 파괴됐다. 작은 개울은 복개되고, 계곡은 유원지로 개발되며,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1급수 환경이 급격히 줄었다. 2011년에는 가재가 멸종위기종 후보로 지정될 정도로 개체 수가 감소했다. 가재는 청정 지역의 지표생물로, 물살이 약하고 수온이 낮은 1급수나 빈부수성이 유지되는 2급수에서 주로 서식한다. 수온 20도까지 견디고 용존산소량이 부족해도 일주일 이상 버틸 수 있지만, 일반 가정에서의 사육은 거의 불가능하다. 높은 용존산소량과 강력한 여과 장치가 없으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번식도 까다로워, 포란 개체를 데려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인공 번식 사례는 거의 없다.
가재의 감소에는 외래종의 유입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7년부터 유입된 미국 가재(노멀클라키)는 생태계 교란 외래종으로 자리 잡았다. 논이나 농수로에서 쉽게 발견되는 이 가재는 잡기 쉽고 맛도 좋아 일부 지역에서 식용으로도 활용된다. 미국 가재는 토종 가재의 서식지를 침범하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다.
가재는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잡식성으로 낙엽과 유기물을 분해해 물속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국내 서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환경오염, 서식지 개발, 외래종의 확산은 가재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다. 한때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개울에서 가재를 잡던 추억은 이제 희미한 과거가 됐다. 가재를 보존하려면 청정 수질을 유지하고, 외래종의 확산을 막으며, 서식지를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