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질색하는 족발·편육, '유럽의 한국'으로 불리는 나라에도 있었다

2025-04-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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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로 꼽히는 곳

'유럽의 한국'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인과 정서적·문화적으로 닮은 점이 많은 나라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전통 음식이 외국인들이 기피하는 한국의 전통 음식과 언뜻 보기에 상당 부분 비슷해 이목을 끌고 있다.

이탈리아 길거리의 한 노점상 / Ingrid Pakats-shutterstock.com
이탈리아 길거리의 한 노점상 / Ingrid Pakats-shutterstock.com

이탈리아가 '유럽의 한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감정이 풍부하고 가족 중심적인 정서, 미식 문화, 빠른 경제 성장, 스포츠에 대한 열정 등 여러 공통점이 두 나라를 닮아 보이게 한다. 한국과 이탈리아는 사람 사이의 정을 중시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문화가 강하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의식과 따뜻한 인간관계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정서적 유사성은 양국 국민들이 서로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미식 문화는 두 나라의 가장 강력한 공통분모다. 이탈리아와 한국은 음식에 자부심이 강하다. 자부심만 강할 뿐 아니라 음식 문화의 전통과 고유성이 다른 나라들과 남다른 만큼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피자, 올리브유가 자국의 가정식인 동시에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음식인 것처럼 한국의 된장찌개, 불고기, 김치도 그렇다. 식사를 통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정을 나누는 문화 역시 두 나라에 일상적인 모습이다.

무엇보다 삼겹살은 오랜 시간 한국인만의 소울푸드로 알려져 왔다. 해외 관광객 사이에서는 K-푸드로 불리며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외국에서는 삼겹살에 지방이 많아 별로 선호하는 식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몸에 안 좋은 부위를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는 우리 민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음식 족발 / cheerywave-shutterstock.com
한국 음식 족발 / cheerywave-shutterstock.com

이는 비단 삼겹살만을 두고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돼지의 껍데기와 발, 귀, 내장, 뼈 등 각종 부속물을 아낌없이 이용해 순대, 족발, 돼지 껍데기 구이, 곱창구이, 막창구이 등 다양한 요리로 활용해 왔다. 이런 음식들은 이제 한국인들의 소울푸드가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 입장에서는 보기에도 먹기에도 역한 음식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한국에 오래 살았더라도 여전히 순대나 곱창, 막창에는 입도 못 대는 외국인들이 많다.

이런 이유로 많은 한국인 역시 돼지 부속물을 이용한 음식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만 먹는 음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도 돼지 부속물을 한국처럼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나라가 있다. 바로 유럽의 한국으로 불리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에는 '코파 디 테스타'(Coppa di testa)라는 음식이 있는데 겉만 보면 영락없는 한국의 돼지머리 편육과 똑같이 생겼다. 또 돼지족발로 만든 소시지인 '잠포네 디 모데나'(Zampone di Modena)도 외관상으로는 그냥 족발이다. 심지어 잠포네는 무려 1511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 깊은 이탈리아의 전통 새해 음식이다.

'잠포네 디 모데나'(Zampone di Modena) / francesco de marco-shutterstock.com
'잠포네 디 모데나'(Zampone di Modena) / francesco de marco-shutterstock.com

먼저 '잠포네'는 1511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Emilia-Romagna) 지역, 특히 모데나(Modena)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화에 따르면 모데나의 도시 미란돌라가 프랑스 군에 포위됐을 당시 지역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오래 보관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돼지껍질과 다리 안에 고기를 채워 보존하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다. 잠포네는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1969년에는 유럽연합의 원산지 보호 지정(PGI)도 받았다. 즉 잠포네는 지정된 지역과 방식으로 만들어져야만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뿌리 깊은 음식인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잠포네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이다. 전통과 가족의 연대, 새해를 시작하는 희망을 상징하며 지금도 크리스마스 직후부터 연말연시까지 잠포네는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메인 요리다.

francesco de marco-shutterstock.com
francesco de marco-shutterstock.com

잠포네의 맛은 짭짤하면서도 진하고 고소한 육향이 인상적이다. 부드럽게 익은 돼지고기와 껍질의 쫀득한 식감이 조화를 이루며 소시지 특유의 풍미와 향신료 향이 입안에 가득 퍼져 잊기 힘든 맛을 선사한다. 보통은 렌틸콩과 곁들여 먹는데 이는 돈과 풍요를 상징한다. 렌틸콩의 동그란 모양이 동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잠포네와 렌틸콩을 함께 먹으며 새해 복과 부를 기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파 디 테스타'(Coppa di testa) / Claudio Caridi-shutterstock.com
'코파 디 테스타'(Coppa di testa) / Claudio Caridi-shutterstock.com

'코파 디 테스타'(Coppa di testa)도 한국 음식 편육과 비슷하다. 코파 디 테스타는 이탈리아의 전통 육가공 식품 중 하나로, 지역에 따라 카포콜로 디 테스타(Capocollo di testa), 솀, 수프레사타 디 테스타(Soppressata di testa)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주로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에서 먹는 별미로, 농촌의 지혜와 전통이 담긴 대표적인 돼지고기 활용 요리다.

코파 디 테스타는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서 도살된 돼지를 남김없이 활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됐다. 이탈리아에서는 겨울철에 돼지를 도축해 다양한 육가공품을 만드는 문화가 발달해 있는데, 코파 디 테스타는 이 과정에서 머리 부위를 활용해 만든 대표적인 보존 식품이다.

특히 중세 이후에는 가난한 농가의 겨울철 단백질 공급원으로, 귀한 햄이나 소시지를 만들고 남은 부위를 절약해 활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현재는 이탈리아의 전통 육제품으로 인정받아 이탈리아 시골 장터에서 지역 특산물로 판매되며 슬로우푸드 운동에서도 주목하는 식문화 자산 중 하나다.

코파 디 테스타는 풍부하고 진한 육향, 그리고 다양한 부위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식감이 특징이다. 부드러운 볼살, 쫄깃한 껍질, 고소한 지방층이 한 조각 안에 모두 담겨 있어 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향신료와 허브가 더해져 약간의 스파이시함과 산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요리는 차가운 상태로 얇게 썰어 안티파스토(전채 요리)로 제공되며 빵, 치즈, 피클, 와인과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산미 있는 화이트 와인이나 가벼운 레드와 잘 어울린다.

이처럼 이탈리아와 한국은 문화, 정서,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놀라울 만큼 비슷한 면모를 보여준다.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상과 사람 사이에서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탈리아를 '유럽의 한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유사성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home 한소원 기자 qllk338r@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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