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화 즉시 에너지 문제 근본해결... 한국이 인류 새 문명 열 수도

2025-04-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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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2040년 상용화 목표 개발 중인 인공태양 기술
실험실 넘어 실증 단계... 한국 기술력 세계 최고 수준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제작한 이미지.

태양이 지구로 내려온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끝없는 에너지를 뿜는 태양의 심장이 사람들 손에 들어오는 날을 상상해보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15일 대전 유성구의 연구원 본관동에선 한·미 핵융합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융합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한국형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케이스타'(KSTAR)에 대해 국내·외 핵융합 전문가의 진단과 조언을 듣는 '제11차 KSTAR 국제자문위원회의'를 계기로 마련됐다.

핵융합 에너지는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에서 시작된다. 태양 중심에선 수소 원자핵들이 엄청난 압력과 온도 아래 융합해 헬륨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질량 일부가 에너지로 바뀐다. 아인슈타인의 E=mc² 공식이 이 마법을 설명한다. 지구에서 이 과정을 재현하려면 태양보다 훨씬 높은 온도, 약 1억 도 이상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초고온 상태에선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를 넘어 플라스마라는 제4의 상태로 존재한다. 플라스마는 전자와 이온이 자유롭게 떠다닌다. 마치 우주의 원시 수프 같은 상태다. 이 플라스마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가두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핵융합 기술의 핵심이다. 한국의 케이스타는 이 플라스마를 1억 도에서 수십 초 동안 유지하며 세계 기록을 세웠다. 2024년엔 48초, 고성능 H-모드에선 102초를 달성하며 핵융합 실증로 상용화를 향한 발판을 다졌다.

도넛 모양의 토카막 장치인 케이스타는 초전도 자석을 사용해 플라스마를 가둔다. 이 장치는 2008년 첫 플라스마 발생 이후 꾸준히 성능을 높여왔다. 2018년 1.5초였던 1억 도 플라스마 유지 시간이 2020년 20초, 2021년 30초로 늘어났고, 이제는 48초까지 도달했다. 목표는 내년까지 300초, 즉 5분 연속 운전이다.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다. 플라스마를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수록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실증로에 가까워진다. 케이스타는 탄소 디버터를 텅스텐으로 교체하며 열 저항성을 높였고, 이로써 더 높은 온도와 밀도를 견딜 수 있게 됐다. 텅스텐은 열에 강하지만 불순물이 플라스마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이를 제어하는 기술이 현재 연구의 핵심 과제다.

한·미 협력은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날 열린 제11차 KSTAR 국제자문위원회에선 미국 제너럴 아토믹스의 DⅢ-D 장치와의 공동 실험이 주목받았다. DⅢ-D는 플라스마 진단 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양국은 텅스텐 디버터 환경에서 장시간 플라스마 운전 기술을 개발 중이다. 디버터는 플라스마의 강한 열을 받아내 진공 용기를 보호하는 장치로, 핵융합로의 내벽 소재로 적합한 텅스텐의 불순물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이 협력을 통해 케이스타는 신규 진단 장치를 도입하고, 플라스마 상태를 더 정밀히 측정할 수 있게 됐다. 프린스턴플라스마물리연구소와 컬럼비아대학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플라스마 제어 기술 개발에 동참했다. AI는 플라스마의 불안정성을 예측하고 붕괴를 막는 데 혁신적인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DⅢ-D에서 AI 기반 제어 기술을 적용해 고압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한 사례는 이를 증명한다.

미국 에너지부는 매년 약 400만 달러, 한화로 60억 원을 케이스타 공동 연구에 투입한다. 한국도 올해 한·미 공동 연구사업을 신설하며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이 자금은 초전도 자석, 블랑켓, 핵융합로 설계 같은 공학적 과제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 기반의 차세대 시스템 개발에도 쓰인다. 블랑켓은 핵융합로에서 중성자의 열을 흡수해 전기를 만드는 핵심 부품으로, 실증로의 경제성을 좌우한다. 양국은 이런 기술들을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와 한국의 차세대 실증로 K-DEMO에 적용할 계획이다. ITER는 7개국이 프랑스에 건설 중인 프로젝트로, 케이스타와 비슷한 텅스텐 디버터를 사용해 실증 데이터를 쌓고 있다.

핵융합 기술의 현재 수준은 실험실을 넘어 실증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케이스타는 1억도 플라스마를 수십 초 유지하며 상용화의 문턱에 다가섰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텅스텐 불순물 제어, 플라스마 안정성 확보, 그리고 경제적인 전기 생산까지, 각 단계마다 정밀한 조율이 필요하다. ITER는 2035년 본격 가동을 목표로 하지만 상용화는 2040년대 이후로 예상된다. 한국은 K-DEMO를 통해 2040년대 핵융합 발전소를 세우겠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은 플라스마 제어와 장치 설계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핵융합 에너지가 상용화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먼저 에너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핵융합의 연료는 바닷물에서 얻는 중수소와 리튬에서 추출하는 삼중수소다. 이 자원은 사실상 무한하다. 수소 1g이 핵융합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석탄 21톤, 석유 1만2000리터와 맞먹는다. 게다가 핵융합은 탄소 배출이 없고, 원자력처럼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남기지 않는다. 사고 위험도 적다. 플라스마는 외부 조건이 조금만 어긋나도 즉시 붕괴해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 이런 특성 덕분에 핵융합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청정에너지로 꼽힌다.

경제적 파급 효과도 엄청나다. 핵융합 발전소가 상용화되면 에너지 비용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현재 화석 연료 의존도가 높은 산업, 예를 들어 제철이나 화학 공정 같은 분야가 저렴한 전기를 바탕으로 친환경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센터, AI, 전기차처럼 전력 소모가 큰 신산업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받으며 성장할 것이다. 국가 단위에선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지며, 중동이나 러시아 같은 자원 강대국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든다. 한국처럼 자원 빈국에겐 특히 큰 기회다. 2040년대 K-DEMO가 전기를 생산하면, 한국은 에너지 수출국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사회적 변화도 뒤따른다. 에너지 접근성이 높아지면 개발도상국의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여전히 전기 없이 사는 현실에서 핵융합은 전력 공급의 지역적 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값싼 전력은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해수 담수화 같은 에너지 집약적 기술이 보다 경제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물론 상용화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기술적 난제뿐 아니라 초기 투자 비용, 규제, 그리고 기존 에너지 산업과의 경쟁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핵융합이 성공한다면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열 수 있다.

한국은 후발주자였지만 이제 세계 핵융합 연구의 선두에 서 있다. 인류가 별을 손에 쥐는 그날을 한국인 손으로 이룰지도 모른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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