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옛 물건 취급돼 버려지는데…외국선 비싸게 거래되는 뜻밖의 '물건'
2025-04-1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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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명되고 있는 한국 전통 도자기의 숨겨진 가치
한국에서는 흔히 필요 없는 물건처럼 취급되며 종종 버려지기도 하는 '물건'이 외국에서는 고가에 거래되며 주목받고 있다.

바로 항아리 등을 일컫는 '옹기'에 대한 이야기다. 옹기는 전통적인 제작 방식과 미학, 발효에 최적화된 기능성까지 갖춘 이 도자기들이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글로벌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뜻밖의 재평가를 받고 있다.
옹기는 한국인의 삶과 오랜 시간 함께한 대표적인 도자기다. 된장, 간장, 김치 등 발효음식 저장에 최적화된 숨 쉬는 그릇으로, 미세한 기공 구조를 통해 발효 과정에 필요한 공기 순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스테인리스, 플라스틱, 유리 용기가 대중화된 이후 일상에서 옹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도시화와 더불어 저장 공간이 줄고, 대량생산된 주방 용기가 보편화되면서 옹기는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심지어 아파트, 주택 이사 과정에서 항아리를 버리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의 전통 항아리와 옹기는 수천 달러에 거래되며, 수집가와 예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선 시대 옹기의 소박한 형태와 질감이 와비사비 철학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차문화와 접목돼 고급 수집품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조선시대 옹기나 백자는 지금도 일본 경매 시장에서 고가로 낙찰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식생활과 환경 친화적 삶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은 자연 발효와 보관이 가능한 한국의 옹기에 큰 매력을 느낀다. 특히 플라스틱 대신 자연소재로 만든 용기를 선호하는 트렌드 속에서 옹기의 투과성과 기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일부 장인은 전통 방식 그대로 옹기를 제작해 예술품으로 선보이며, 하나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옹기도 등장하고 있다.
옹기 중에서도 단연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달항아리다.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백자로, 두 개의 반구형 그릇을 연결해 완성하는 구조로 인해 완벽하지 않은 균형과 흠조차도 미학으로 여겨진다. 절제된 디자인과 순백의 색감은 유교적 가치관을 상징하며, 이 단순미는 오늘날 미니멀리즘 미학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조선 달항아리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수십억 원에 낙찰된 바 있으며, 이는 한국 전통 도자기의 미적 가치가 세계적으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증거로 손꼽힌다.
옹기의 기능성과 환경친화성도 재조명받고 있다. 옹기는 대부분 흙, 물, 불이라는 자연 요소만으로 만들어지며, 별도의 화학 처리 없이도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고, 폐기 후에도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일회용 플라스틱의 대체재를 찾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옹기는 환경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옹기의 쓰임새도 확대되고 있다. 기존의 대형 장독 외에도 실내 인테리어용 소형 옹기, 테이블 위에 올려둘 수 있는 발효 항아리, 화병이나 조명 커버로 재탄생한 형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기술과 현대적 디자인이 접목된 상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반향을 얻는 경우도 많다.
옹기와 항아리는 단지 발효 음식을 담는 도구를 넘어, 한국인의 삶과 미의식, 자연과의 조화 등을 상징하는 전통 유산이다. 국내에서는 잊혀지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문화적 깊이와 기능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버려지던 물건이 보물이 되는 아이러니, 그 안에는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전통의 진가가 숨어 있다.